[공연 리뷰] 세계 巨匠이 만든 춘향, 권력에 맞서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11.24 00:51

안드레이 서반의 창극 '다른 춘향'

국립창극단의 창극 '다른 춘향' 공연 사진
/국립극장 제공

"춘향은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법정 최고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검찰)

"형법에 유부녀를 강간한 죄는 어떻게 처벌한다고 돼 있소?"(춘향)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새로운 '춘향전'이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다른 춘향〈사진〉'은 세계적 거장(巨匠)인 루마니아계 미국인 안드레이 서반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서반의 '춘향'은 사랑과 수절(守節)의 원작 줄거리를 '권력의 압제에 맞서는 개인의 존엄'으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 몽룡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는 초반부에 프롤로그처럼 스쳐 지나가고, 명예훼손과 반역죄를 덧씌우는 변학도의 횡포에 맞서 권리와 자유를 지켜 내려는 춘향의 '항쟁'이 작품 중심에 놓인다.

철골 구조 속에 모래와 물이 담기고, 양쪽으로 나선형 계단이 설치된 어두운 무대는 춘향을 독일 표현주의 무대 속에 가둬놓은 것처럼 공포감을 상승시켰다. 춘향은 여기서 반라(半裸)로 물속을 뒹굴며 고문당하고 핏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며 불의(不義)와 싸우는 역할을 끝까지 고수한다.

반면 몽룡에 대한 감정은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대폭 현대적으로 바뀐 대사를 통해 춘향은 몽룡을 향한 원망을 쏟아낸다. "야! 어떻게 3년 동안 전화 한 통 안 할 수 있어? 클럽 언니들이 건네는 농염한 눈빛에 홀려 그런 거야?"

서반은 종종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부 평론가는 "차우셰스쿠 시대 루마니아의 분위기와 한국 현 정부에 대한 묘사가 뒤섞여 있어서 비판하는 '권력'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새롭고 강렬한 '춘향전'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선 충분히 가치를 둘 만했다. 창(唱)은 더욱 힘이 넘쳤다. 애절한 정조가 감정의 파도에 실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제대로 객석에 꽂혔다.


▷12월 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