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17 01:11
한국 미술사학의 큰 기틀 닦아… 스승인 고유섭 추모비 옆자리에
내년 3월 진홍섭 추모비도 세워
"감개무량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문무대왕 해중릉(海中陵)을 조사하던 기억이 눈에 선한데…."
스승의 추모비를 어루만지던 정영호(80)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울컥했다. 15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경주 앞바다 문무대왕 해중릉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국 미술사학계 거목인 초우(蕉雨) 황수영(1918~2011) 박사의 공덕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개성에서 태어난 황 박사는 일본 도쿄(東京)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개성박물관장으로 일하던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1905~1944) 선생을 사사했다. 이때 함께 배운 고(故)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故) 진홍섭 전 문화재위원장과 함께 미술사학계의 '개성 삼걸(三傑)'로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동국대 교수 및 동국대 총장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불교미술의 탑·불상·공예 등 광범위한 연구를 펼쳤다. 1962~1965년의 석굴암 보수공사, 1967년 경주 앞바다 문무대왕 해중릉(海中陵) 확인조사 등이 그의 업적이다.
스승의 추모비를 어루만지던 정영호(80)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울컥했다. 15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경주 앞바다 문무대왕 해중릉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국 미술사학계 거목인 초우(蕉雨) 황수영(1918~2011) 박사의 공덕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개성에서 태어난 황 박사는 일본 도쿄(東京)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개성박물관장으로 일하던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1905~1944) 선생을 사사했다. 이때 함께 배운 고(故)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故) 진홍섭 전 문화재위원장과 함께 미술사학계의 '개성 삼걸(三傑)'로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동국대 교수 및 동국대 총장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불교미술의 탑·불상·공예 등 광범위한 연구를 펼쳤다. 1962~1965년의 석굴암 보수공사, 1967년 경주 앞바다 문무대왕 해중릉(海中陵) 확인조사 등이 그의 업적이다.

추모비는 정 교수가 주축이 돼 후학들이 뜻을 모아 건립했다. 정 교수는 "생전 존경하셨던 스승 우현 선생의 추모비 옆자리에 세웠고, 그 옆에는 내년 3월 8일 진홍섭 선생의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라며 "세 분의 추모비가 나란히 한자리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나선화 문화재청장, 최양식 경주시장을 비롯해 개성 출신인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호관 전 국립전주박물관장,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등 문화재계 인사 120여명이 모였다. 오니시 슈야(大西修也) 일본 규슈대 명예교수 등 일본 제자들도 참석했다. 추모비 건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은 축사에서 "후진 양성과 고고학 발전을 위해서 크게 기여하신 분"이라며 "문무대왕 해중릉 앞에 세워진 이 추모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서 문화와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교육 현장으로 의미가 깊다"고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나선화 문화재청장, 최양식 경주시장을 비롯해 개성 출신인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호관 전 국립전주박물관장,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등 문화재계 인사 120여명이 모였다. 오니시 슈야(大西修也) 일본 규슈대 명예교수 등 일본 제자들도 참석했다. 추모비 건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은 축사에서 "후진 양성과 고고학 발전을 위해서 크게 기여하신 분"이라며 "문무대왕 해중릉 앞에 세워진 이 추모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서 문화와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교육 현장으로 의미가 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