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性, 사랑과 휴머니티로 승화하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11.13 01:55

[뮤지컬 극본, 고선웅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락희맨쇼·칼로 막베스 등 스타 연출가이자 극작가
창극, 창법 다른 '우리 뮤지컬'… 진취적인 여인 옹녀 재조명

"네? 제가요?… 아, 아니, 그건 창극인데요!" 연출작인 연극 '홍도' 공연장에서 기자로부터 차범석희곡상 당선 소식을 들은 연출가 고선웅(46)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뮤지컬 극본 부문 수상은 좀 의외의 일이긴 했다. 작품이야 지난 6월 공연 때부터 큰 화제와 좋은 평이 뒤따르긴 했지만, 이 작품의 당선은 '창극도 음악극이라는 점에서 뮤지컬로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락희맨쇼' '칼로 막베스' 등의 작품으로 '스타 연출가' 소리를 듣는 고선웅은 많은 작품의 극본을 직접 쓰는 진지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차범석 선생님과의 인연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때인 1993년 한 대학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제가 이런 얘길 하긴 좀 민망한데요, 그때 심사위원이셨던 차 선생께서 '연극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칭찬해 주신 게 그 후 큰 힘이 됐습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은 “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류가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은 “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류가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 광고회사에 취직했던 그는 한동안 연극과 떨어져 살았다. 1999년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언론사 신춘문예에 당선될 무렵, 직장 생활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내가 63빌딩 16층 저 안쪽 중간 내 자리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어야 하나?" 사표를 던지고 나와 한 달에 한 번씩 희곡을 썼다. 2005년 극단 '마방진'을 창단했다. 연극의 길은 고난의 길이기도 했다. 대학로 근처 연습실을 극장으로 개조했다가 임대료를 못 내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베르테르' '지킬 앤 하이드' 등 많은 뮤지컬 극본 작업도 맡았던 그에게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극작과 연출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창법만 다를 뿐, 대사를 노래로 한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똑같았습니다. '우리 뮤지컬'이라고 해야겠지요." 원작을 들여다보니 그렇게 외설적이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성(性)적인 것을 삶의 밑천으로 승화하는 격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휴머니티도 들어 있었고요." 하지만 변강쇠의 죽음 이후 후반부가 맥이 풀려 버리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는 성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를 진취적이고 열성적으로 살아가는 여인으로 옹녀를 다시 그려내 작품에 힘을 실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는 조정래 원작 소설을 뮤지컬화하는 '아리랑'의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진부하지 않다' '우리 이야기인데 힘이 있다'는 말을 들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