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대중곁으로 좀 더 품위있게 다가가길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4.10.16 03:01 | 수정 : 2014.10.16 09:41

[제21회 '방일영 국악상' 이춘희 名唱]

경기민요 안비취 명창 제자… 가수 꿈꾸다 20세부터 민요로
프랑스서 낸 '아리랑과 민요', 獨 비평가 선정 음반상 받아

"제가 방일영 국악상을 받게 됐다고요? 정말 믿기지 않네요."

이춘희(67) 명창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였다.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라고도 했다. 이 명창의 스승은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예능 보유자였던 안비취(1926~1997) 명창. 묵계월·이은주 명창과 함께 경기민요의 대가로 꼽힌 국악계 스승이었다. "1975년 선생님이 '얘, 내가 문화재가 됐다'며 울먹이면서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여장부셨어요. 엄하지만 따뜻하신 분이었고요."

그 무렵 한번은 KBS가 국악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안비취 명창은 KBS 사장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국악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저도 소리를 관두겠습니다." 당시 방송사 사장은 "누가 시켜서 왔느냐"며 '배후'를 캤다. 안비취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국악 프로그램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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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명창이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소리를 하지 않고 촬영할 땐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소리가 시작되자 춤사위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전기병 기자

서울 출신인 이춘희 명창은 원래 황금심 같은 스타 대중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황금심이 부른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라디오 프로의 가요 백일장에 나가 월말 장원까지 했다. 그러다 스무 살 무렵 민요에 빠져 이창배 선생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웠다. 경기민요 대가였던 스승은 7년여 만에 아끼던 제자를 안비취 명창에게 보냈다. "소리의 섬세함을 깊이 있게 배우려면 아무래도 여스승에게 가는 게 낫겠다"는 스승의 배려였다고 했다.

안비취 명창은 소리뿐 아니라 제자들의 일상도 엄격하게 가르쳤다. "제가 웃음이 많아서 선생님께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늘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투명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스승은 1993년 중풍으로 쓰러졌고, 암으로 투병하다 1997년 세상을 떴다.

이 명창은 깨끗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가 부르는 '긴 아리랑'이나 '노랫가락'을 들으면,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귓속을 파고든다. "원래 목소리가 약했어요. 고음도 잘 안 나오고, 저음도 불안했고…." 연습과 운동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12분 남짓한 '유산가'를 30번씩 되풀이해 부르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를 대여섯 시간씩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숫기가 없어 무대에만 오르면 가슴이 울렁거렸던 증상도 말끔히 가셨다.


 

이춘희 명창 프로필 정리 표

이 명창은 2012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아리랑'이 세계무형유산으로 채택될 때 현장에 있었다. "문화재청장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랑을 부르면서 앞으로 걸어나갔어요. 악기도, 마이크도 없이 목소리만으로 불렀지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된 회의에 지쳤던 참석자들이 단비를 만난 듯 즐거워하더라고요. 노래가 끝나니까 전부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어요. 카메라 플래시도 정신없이 터지고요." 올 초 프랑스 공영방송인 라디오 프랑스에서 낸 경기민요 음반 '아리랑과 민요'가 독일 비평가가 뽑은 음반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아끼는 레퍼토리는 '이별가' '서울 긴 아리랑' '정선아리랑'. "왠지 서글픈 정서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경기민요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대중에게 알릴 수 있을지 관심이 많다. "경기민요는 부르기에 따라 천하게도, 품격 있게도 보일 수 있어요. 당대의 유행가에서 출발했으니까요.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라는 후렴구의 '태평가'는 막걸리 한잔 마시면 흥얼거릴 수 있잖아요. 누구나 한자락 배워서 취미로 부를 수 있게 하면서 품위를 지키는 게 고민이에요."

요즘 이 명창은 경기민요 설립자들인 박춘재, 이창배, 안비취 선생의 동상을 세우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방일영 국악상은…]


最高 국악 스타들에게 수여… 21회 맞은 '국악계 노벨상'


1994년 출범한 방일영 국악상은 방일영 선생과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설립한 방일영문화재단이 국악 전승과 보급에 공헌한 명인 명창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상이다.

첫 회 수상자인 만정 김소희 선생을 비롯, 이혜구(2회·국악이론) 박동진(3회·적벽가) 김천흥(4회·종묘제례악, 처용무) 성경린(5회·종묘제례악) 오복녀(6회·서도소리) 정광수(7회·춘향가, 수궁가) 정경태(8회·가사) 이은관(9회·서도소리) 황병기(10회·가야금) 묵계월(11회·경기민요) 이생강(12회·대금산조) 이은주(13회·경기민요) 오정숙(14회·춘향가) 정철호(15회·고법) 이보형(16회·민속악) 박송희(17회·흥보가) 정재국(18회·피리정악 및 대취타) 성우향(19회·춘향가)에 이어 작년 안숙선 명창까지 최고의 국악계 스타들이 상을 받았다. '국악계 노벨상'으로도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