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법에 홀리다

  • 싱가포르=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9.26 00:48

서커스 '카발리아' 싱가포르 공연
'인간과 말의 교감' 주제로 꾸며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말(馬)의 모습이 이렇게 매혹적일 줄 몰랐다. 꿈꾸는 듯, 푸른 빛 조명을 안고 모래 위에 나타난 말의 자태엔 기품이 있었다. 기수(騎手)가 등 위에서 두 발로 서거나 공중제비를 해도 태연하게 달렸고, 때론 무리지어 방향을 180도 틀거나 음악에 맞춰 춤추듯 걷기도 했다.

지난 24일 저녁,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특설 대형 천막에선 연신 관객의 탄성이 터졌다. '인간과 말의 교감(交感)'을 주제로 한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Cavalia)'의 첫 동아시아 투어 공연. 오는 11월 한국에 오는 이 공연은 2003년 초연 이후 세계 52개 도시에서 400만명이 관람했으며, 워싱턴포스트가 '최고의 승마 공연'이라고 평했던 캐나다산(産) 서커스다.

말 50마리가 등장하는 ‘카발리아’에서 기수가 달리는 말 안장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
말 50마리가 등장하는 ‘카발리아’에서 기수가 달리는 말 안장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 /씨라이브 제공

예술감독은 '태양의 서커스' 공동 설립자인 노만 라투렐(Latourelle). 서커스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킨 '태양의 서커스' 시리즈의 흐름을 동물로 확대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우선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말 50마리와 배우(기수·곡예사) 33명이 출연하며, 공연 도시마다 관객 2000명을 수용하는 2400㎡의 천막 극장을 짓고 모래 2500t을 깔아 놓는다.

싱가포르에서 본 '카발리아' 공연은 잘 훈련된 말과 배우들이 펼치는 기예(技藝)의 성찬이었다. 말의 움직임은 우아하면서도 유연했고, 베어백 라이딩(안장 없이 말타는 기술)과 로만 라이드(달리는 말 등에 두 발로 서는 기술)로 시작한 배우들의 움직임은 현란하고 다채로운 마상(馬上) 곡예로 이어졌다.

말 위에서 체조의 안마 동작을 하거나 안장에 발을 대고 거꾸로 매달리는가 하면, 줄에 매달린 여성 곡예사들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는 환상적인 장면이 갈채를 이끌었다. 60m 폭 스크린 영상이 순식간에 무대 공간을 사막, 숲, 동굴, 성채로 바꾸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공연을 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연극 '에쿠우스' '워 호스' 등에서 상징적으로 나오던 말이 직접 무대에 등장한 것이 놀라웠다"며 "전체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카발리아' 공연을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역시 주인공인 말. 이날 취재진에게 공개된 공연장 옆 마구간에서, 말들은 10㎡ 넓이의 철제 우리를 하나씩 사용하며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 매일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받고 1시간씩 방목장을 돌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푼다. 마구간 온도는 23~24도로 유지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이 말들은 평균 5~6개월 훈련을 받고 무대에 서며, 기수 한 사람이 말 한 마리와 4~5년씩 유대 관계를 가진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 11월 5일~12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 화이트빅탑씨어터,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