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현실 잔혹동화… 그러나 기적은 있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9.25 01:05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허름한 옥탑방 바닥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장서를 자세히 보면 모두 동화책이다. 동화 속 고성(古城)처럼 보이는 뒤편의 실루엣은 사실 서울 재개발 구역의 집들과 교회가 만든 풍경이고, 색깔은 우중충한 잿빛이다.

극단 대학로극장의 연극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최치언 작, 이우천 연출)는, 동화와 현실이라는 양 극단의 민낯이 만나 불친절하게 뒤섞이면서 거칠고 생경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1970년대 김민의 그로테스크한 대본소 만화나 1990년대 초 오태석의 연극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봤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게 했다.

연극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에서 자신이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춘복(정우준·왼쪽)과 현실적인 문제로 그를 찾아온 애자(이지하).
연극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에서 자신이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춘복(정우준·왼쪽)과 현실적인 문제로 그를 찾아온 애자(이지하).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주인공 청년 춘복(정우준)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인물처럼 보인다. 얼굴과 온몸이 뒤틀린 그는 "뇌성마비 환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법에 걸렸을 뿐"이라 주장하며 끊임없이 동화를 쓰고 있다. 어느 날 애자(이지하)라는 여인이 찾아오는데, 사경에 처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춘복으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려는 것이다. 춘복은 뇌성마비 환자 영희를 임신시켰다는 누명을 쓰고 영희의 오빠 달수로부터 "콩팥을 하나 떼라"는 협박을 받았던 것.

애자는 행여 춘복의 마음이 바뀔까 봐 수술 전까지 그의 집에 머물다 그가 쓴 동화를 읽는다. 빗자루 타는 것 말고는 능력을 잃은 마녀, 냉장고에 숨어 세상을 불지르려 하는 백수 청년, 노래방 도우미 노릇을 하는 천사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순간, 춘복은 불행의 마법을 풀고 구원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희생(犧牲)을 선택하고 이 사실을 깨달은 애자 역시 춘복의 세계로 편입된다.

극 전체를 의도적인 불협화음으로 채색한 이우천의 연출은 독특한 울림을 주는 데 성공했고, 이지하의 절제된 비극 연기도 주목할 만했다. 결국 '고통과 구원'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짚는 이 연극은 "세상은 여기서 저기로 자리를 옮기는 일에 불과하며, 그 자리를 아주 잘 옮겼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같은 대사로 여운을 남긴다.


▷27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공연 시간 100분, (02)3676-3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