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흉내내던 남자… 모든 役을 소화해내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9.18 00:49

뮤지컬 '보이첵' 주연 김수용
"모든 행위예술 펼치는 뮤지컬… 해볼 만하겠다 생각 들었죠"

뮤지컬 '보이첵' 주연 배우 김수용(38)이 인터뷰 장소에 차를 몰고 왔다. 나이 지긋한 주차 요원이 다가와 말했다. "한 층 위에 주차하셔야 되는데요… 어?" 운전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말투가 바뀌었다. "많이 컸네~!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있네." 그는 "길을 걷다 보면 친구 아들인 줄 알고 '왜 인사 안 하냐'며 뒤통수를 치는 분도 있다"며 웃었다.

30년 전 그는 '국민 배우'라 할 만한 아역이었다. 1982년 정윤희 주연 드라마 '세 자매'로 데뷔했고, 1983년 MBC 드라마 '간난이'에서 숯검댕 묻히고 콧물 흘리며 배고프다고 징징대던 전쟁고아 '영구' 역을 맡았다. 성인 영구 역에 내정된 스타가 '난 못 하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촬영장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머리털을 뽑아갈 정도의 인기였다.

뮤지컬‘보이첵’의 주연을 맡은 김수용은“숱한 고난을 자기 몸 하나로 극복하는 인물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뮤지컬‘보이첵’의 주연을 맡은 김수용은“숱한 고난을 자기 몸 하나로 극복하는 인물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김창숙·주현 같은 선배 연기자들이 진지하게 충고를 했다. "수용아, 넌 지금껏 그저 남들 연기 흉내 냈을 뿐이야. 나이 먹고 나서도 이렇게 하면 안 돼." 제대로 연기를 해 보고 싶어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1학년 때 연극 워크숍을 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눈빛 연기를 하고 있는데 선배들이 "야! 너 뭐해?"라고 소리 질렀다. "무대에서 TV식으로 했더니 객석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때부터 그의 앞에 '무대'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체호프의 '6호실' 등 연극 무대에 서다가 2001년 유준상이 출연한 '더 플레이'를 보고 나선 뮤지컬이란 장르에 눈을 뜨게 됐다. "배우가 연기·노래·춤을 다 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예술이 총집결된 거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풋루스'에서 혈기왕성한 십대 역으로 데뷔한 뒤 작품마다 다채로운 역할로 분했다. '렌트'의 가난한 작곡가, '헤드윅'의 성 전환자, '햄릿'의 자기 분열적 왕자, '영웅'의 안중근 의사를 거쳤다. 올여름 '모차르트!'에선 질투의 화신인 콜로레도 대주교로 나왔다.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이렇게 섹시하면서 소유욕이 넘치는 인물로 표현할 수 있다니"라며 혀를 내둘렀다.

1983년 MBC 드라마‘간난이’에 출연한 김수용(오른쪽)과 누나 역의 김수양.
1983년 MBC 드라마‘간난이’에 출연한 김수용(오른쪽)과 누나 역의 김수양.
'보이첵' 연출가 윤호진은 "주인공을 맡을 배우로 제일 먼저 김수용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심성이 여릴 뿐 아니라 어딘가 동정심을 유발하는 데가 있어 고난을 겪는 하층민 역할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김수용과 김다현이 주인공에 더블 캐스팅된 '보이첵'은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동명의 희곡을 세계 최초로 뮤지컬화한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다. "정말 힘들게 살아가다가 마지막엔 비극을 정화(淨化)하고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할 겁니다."


▷뮤지컬 '보이첵' 10월 9일~11월 8일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