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 없는 루체른… 어떻게 진화했을까

  • 장일범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자

입력 : 2014.09.09 23:24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참관기

스위스 루체른의 KKL 콘서트홀을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2009년 말러 교향곡 1번의 기억이 깊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바도가 살아있을 때 다시 오고 싶었는데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찾게 돼 마음이 쓸쓸했다. 아바도가 지휘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올해엔 서른일곱의 젊은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가 맡았는데 앞으로 과연 누가 맡게 될지, '포스트 아바도'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1999년부터 15년간 루체른 페스티벌을 이끌어온 미하엘 해플리거(Haefliger) 예술감독 겸 행정감독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될지 6개월은 더 지나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페스티벌 상주 작곡가인 진은숙의 신작이 무척 반응이 좋았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한국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앨런 길버트 지휘로 연주한 베토벤 9번‘합창’.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앨런 길버트 지휘로 연주한 베토벤 9번‘합창’. /ⓒLUCERNE FESTIVAL Priska Ketterer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벌이는 교향악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지난 7일과 8일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가 '합창'이 담겨 있는 두 곡을 각각 연주했다. 팔이 부러져 지휘대에 오르지 못한 리카르도 샤이를 대신해서 뉴욕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첫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 게반트하우스 오페라 합창단, 게반트하우스 합창단, 게반트하우스 어린이 합창단 총 148명에 이르는 합창단이 숙련된 솜씨로 그것도 모두 악보 없이 외워서 연주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날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란드샤머, 메조소프라노 게르힐드 롬베르거, 테너 스티브 다비슬림, 베이스 디미트리 벨로셀스키의 연주는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났으며 특히 테너 다비슬림은 솔로 부분에서 악보를 보지 않고 오페라 하듯 노래를 불러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 곡에 앞서 베토벤 9번 교향곡 도입부를 새로 편곡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리드리히 체르하(88)의 2010년 작품이 연주됐다. 현대 작품 연주를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성격에 매우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8일엔 말러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는데 이번 페스티벌 주제인 '프시케'(영혼)에 맞춘 곡목 선정이었다. 길버트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암보로 지휘했고, 어린이 합창단도 역시 악보를 보지 않고 노래했다. 3악장 '인간이여'부터 어제에 이어 솔로를 부른 메조소프라노 게르힐드 롬베르거는 품격 높고 융숭 깊은 가창으로 곡을 이끌어 나갔다. 연이틀 트럼펫과 호른의 잦은 실수는 아쉬웠으나 마지막 5악장 '평화롭게'에서 들려준 현악기의 따뜻하면서도 명주실 뽑듯 피아니시모를 만들어내는 연주는 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세계 최고의 말러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지를 보여줬다.

미하엘 해플리거 감독은 "내년 주제는 유머"라고 했다. 1년 전에 미리 페스티벌 얼개를 짜놓는 것이 축제의 성공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