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정의 '브람스' 獨서 통했다

  • 뮌헨=김기철 기자

입력 : 2014.09.05 00:36

부천시향 유럽투어 연주회
2일 뮌헨 공연, 독일 관객 90%
브람스 교향곡 4번 새로이 해석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시립교향악단의 브람스는 서양 고전음악의 원조(元祖) 독일에서도 통했다. 지난 2일 밤 뮌헨의 대표적 클래식 공연장인 헤라클레스홀. 옛 바이에른 왕궁 안에 있는 이 콘서트홀은 세계적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주홀로 쓰인다. 유럽 클래식 음악의 본산인 이곳에 부천시향이 입성했다.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로 국내에서 이름을 얻은 부천시향은 지휘자 임헌정이 창립 초부터 25년간 이끌어온 젊은 교향악단이다.

지난 2일 뮌헨의 대표적 공연장인 헤라클레스 홀에서 독일 데뷔 연주를 갖고 있는 부천시립교향악단.
지난 2일 뮌헨의 대표적 공연장인 헤라클레스 홀에서 독일 데뷔 연주를 갖고 있는 부천시립교향악단. /사진가 노승환 제공
공연장 벽은 사자를 쓰러뜨리고, 괴수를 때려눕히는 영웅 헤라클레스를 담은 대형 태피스트리 10점이 가득 채웠다. 작곡가 전상직(서울대 교수)의 창작곡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가 헤라클레스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연주됐다. 크레도는 가톨릭 미사 등에서 복음서 낭독 후 부르는 신앙고백. 불안한 현(絃)의 움직임에 이어 호른의 평화로운 선율이 이어지고, 고요한 연주로 마감한 '크레도'는 현지 청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어 2010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자인 강주미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 뒤를 이었다. 170㎝ 넘는 큰 키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강주미는 힘찬 활짓으로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소리 벽을 뚫고 비상했다. 울림이 강한 홀의 특성 탓에 리허설 때는 분투했지만, 공연 때는 오케스트라와 잘 섞였다.

임헌정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 같았다. 임헌정은 공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람스는 가곡 작곡가이다. 교향곡도 노래하듯이 연주해야 한다." 함부르크 출신인 브람스는 바흐, 베토벤과 함께 독일 음악의 상징으로 존경받는 작곡가. 한국에서 날아온 낯선 교향악단이 독일의 위대한 음악 유산 브람스를 독특한 색깔로 해석해내자 공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휘자 임헌정과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
지휘자 임헌정과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 /사진가 노승환 제공
1악장이 끝나자 옆자리에서 보던 독일 저널리스트 조세프 바우어(Bauer)씨는 "저 지휘자는 처음 보는데, 브람스가 그의 장기인 것 같다"고 속삭였다. 50분 가까운 교향곡의 마지막 음이 잦아들고 지휘자의 손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홍보기획사 대표라고 밝힌 관객은 "오케스트라 단원 대부분이 여성들이라 브람스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유럽 오케스트라 못잖은 역동적인 브람스 음악을 들려줘 흥미로웠다"고 했다. 자신도 연주자라며 부천시향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음반을 구입한 관객은 "브람스는 수없이 들었지만, 지휘자의 해석이 매우 독특했다"고 했다. 이날 헤라클레스 홀 관객 1000명 가운데 90% 이상이 독일 현지인이었고, 유학생과 교포들은 간간이 눈에 띌 정도였다.

부천시향은 지난 31일 체코 프라하의 유서 깊은 공연장 스메타나홀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유럽 데뷔 연주를 했고, 4일 밤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대표적 공연장인 무지크페라인 홀에 다시 섰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주홀인 무지크페라인은 말러가 지휘하고, 키워낸 오스트리아 음악의 자존심이다. 임헌정은 지난 1월 부천시향 음악감독에서 물러난 후 계관지휘자로 추대됐고, 현재는 코리안심포니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부천시향의 숙원인 오케스트라 전용홀이 마침내 들어설 것 같다. 전용홀이 완성되면 부천시향의 새로운 도약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