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맞추고, 음정 개념도 없던 아이들이… 발달장애 첼리스트 27명의 기적

  • 광주(경기)=유소연 기자

입력 : 2014.07.28 23:59

첼로 앙상블 '날개' 첫 초청 공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지난 25일 경기도 광주의 SR재활병원 로비. 첼로 선율에 맞춰 환자들이 '만남'을 따라 불렀다. 연주자는 밀알복지재단 첼로 앙상블인 '날개'의 단원들이다. 2012년 10월 자폐·실어증·지적장애 등을 가진 24세 미만 27명이 모여 만든, 국내 첫 발달장애인 첼로 연주단이다. 그동안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자진해서 공연한 적은 많지만, 공연 요청이 들어와 무대에 서기는 처음이다.

창단 때만 해도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자폐증 단원이 대부분이어서 합주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을 지도해온 오새란(34) 지휘자는 단원들과 10초 이상 눈을 맞추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자기 악기만 가지고 놀기 바빴어요. 아이들 특성상 1년 넘도록 옆 친구 이름에도 관심 없는 경우가 많은데 남이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맞춰가는 게 보통 일이겠어요? 한 해 내내 저에게 대꾸도 않던 아이가 '도~, 레~, 미~' 하면서 계이름을 처음 따라 했을 때 제가 엄마도 아닌데 울컥하더라고요."

발달장애인 27명으로 구성된 첼로앙상블‘날개’가 경기도 광주의 재활병원에서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27명으로 구성된 첼로앙상블‘날개’가 경기도 광주의 재활병원에서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단원들의 부모들도 발 벗고 나섰다. 두 달 전부터는 어머니들도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녀들 장애 특성에 맞게 집에서도 연습시키기 위해서다. 김준형(20·발달장애 1급)씨의 어머니 남국희(49)씨는 "우리 아이가 장애 때문에 첼로를 잘 못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배워보니 너무 어렵더라"며 "아이들이 이 정도까지 연주하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변화도 생겼다. 세 살 때부터 자폐와 실어증을 앓아온 유지영(11)양은 늘 무표정하고 입도 굳게 닫혀 있었지만 첼로를 배운 지 5개월이 지나자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지영양은 이날 리허설이 끝나서도 "나 잘했어요?" 하며 선생님을 향해 웃었다.

4세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정지호(14)군은 음정 개념이 없고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흥얼거리는 노래가 생기더니 이제는 노래 한 곡을 완전히 따라 부른다. 어머니 진성해(44)씨는 "첼로는 품에 끌어안고 연주하는 악기여서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며 "첼로는 음색도 중저음이어서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다른 악기에 비해 덜 예민해한다"고 했다.

이날 휠체어를 끌고와 병원에서 공연을 본 김진용(48)씨는 "재활 치료는 자기와의 싸움이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며 "'날개' 단원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공연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새삼 용기가 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