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연출 한번 해 봐라… 60년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7.24 03:02 | 수정 : 2014.07.24 09:58

1955년 연출 시작한 임영웅… 팔순 맞아 '가을소나타' 무대

1969년 산울림극단 창단 시절의 임영웅.
1969년 산울림극단 창단 시절의 임영웅.
"너, 연출 한번 해 봐라!"

1955년, 휘문고 이재훈 교장이 스물한 살 서라벌예대생 임영웅(林英雄)을 불러 그렇게 권했다. 제1회 전국고교연극경연대회에 모교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라는 얘기였다. "네? 다른 학교 연출자는 김동원·이해랑 선생이세요. 어떻게 제가 감히…." "재작년 일을 벌써 잊었나?" 휘문고 2년생 임영웅은 피란지 부산에서 연극예술제를 해 보겠다고 백두진 재무부 장관, 박종화 서울신문 사장 같은 학교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순식간에 기부금 70만원을 걷어 왔었다. "그 정도 열정이면 충분하지 않나?"

연출가 임영웅은 오는 8월 새 연출작 '가을소나타'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연출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지난 22일, 그가 배우 손숙·한명구·서은경 등과 함께 한창 연습 중인 산울림소극장을 찾았다.

"…그때 휘문고생들을 데리고 연출한 작품이 유치진 선생의 '사육신'이었습니다." 여전히 '가장 분주한 연극인 중 한 사람'인 팔순의 연출가가 담담하게 회고했다. '사육신'은 최우수연기상(이진수)을 받는 성과를 거뒀고 '모방 없는 순수한 연극'이란 평까지 들었다.

그로부터 60년 동안 임영웅은 '환절기' '산불'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챙!' 등 100여 편의 연극을 연출하며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大家)'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력에는 고단하였으되 꿋꿋했던 이 땅의 연극사(演劇史)가 고스란히 비친다. 1966년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한 사람도 그였다. 1969년 산울림극단을 창단해 김무생·김성옥·김용림·김인태·사미자·손숙·윤여정·함현진 같은 쟁쟁한 배우를 배출했고, 1985년엔 서교동 자택을 헐고 그 자리에 산울림소극장을 세웠다.

"대표작이 뭐냐고요? 허허…. 역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겠지요." 1969년 '고도'의 국내 초연을 맡았던 그는 지난해까지 40년 넘도록 끈질기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인간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요?"

그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연극의 본질은 결국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건 미친놈이나 하는 짓이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돈 안 되는 이 짓을 하는 겁니다. 왜? 연극이 곧 삶이기 때문이죠." 신문기자도 해 봤고 방송국 PD도 해 봤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오직 연극뿐이었다. "살아있는 배우가 살아있는 관객 앞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예술은 연극밖에 없습니다." 진지한 연극 대신 상업주의에 빠져 관객 취향을 좇는 요즘 연극 풍토가 못마땅한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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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임영웅이 연극 연출 60년 기념작‘가을소나타’출연 배우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손숙, 임영웅, 서은경, 이연정, 한명구. /김연정 객원기자
그는 텍스트 분석에 시간을 많이 들인다. 극을 조각(piece)으로 미세하게 나눠 그 장면의 평면도 위에서 배우들의 동선과 시선을 정교하게 그린다. 과거엔 배우들이 '호랑이'나 '임틀러'라 부르면서 원망했지만, 그는 "이젠 이빨도 다 흐물흐물해졌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손숙이 거들었다. "요즘엔 선생님 목소리가 예전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리지 않아서 오히려 슬플 때도 있어요."

임영웅은 올해 초 갑자기 입원해 사람들을 걱정시켰다. "반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은데, 그러고도 이렇게 연출을 하니 당분간은 안 죽겠구나 싶습니다." 잉마르 베리만의 스웨덴 영화를 각색한 연극 '가을소나타'에 대해 그는 "모녀 관계를 다루는 작품인데, 여성의 삶이 남성보다 훨씬 공감대가 넓고 깊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1986년 '위기의 여자'로 페미니즘 연극의 새 흐름을 만들었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임영웅 연출 60년 기념 연극 '가을소나타' 8월 22일~9월 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