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건물 잉여공간? 예술 잉태공간!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4.07.22 00:45

[젊은 예술인들의 무대로 거듭나다]

싼 대관료에 개방성 갖춘 공간… 콘서트·미술전시 등 활용도 높아
재개발 지역에 밀집된 '옥상 무대', 노후된 동네 살리는 촉매 역할도

#1. 지난 18일 금요일 저녁 서울 성북동 언덕에 있는 한 허름한 연립주택 옥상. 푸르스름한 하늘에 주홍빛 노을이 퍼질 무렵 젊은이들이 하나 둘 옥상으로 모여들었다. 일러스트를 그린 빈병, 그림 그린 골판지 조각, 작업용 티셔츠…. 각자 가져온 정체 모를 사물들은 이내 옥상 빨랫줄에 널렸다.

젊음과 함께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뜻하는 속어)이 깊어간 이곳. 지난해 문을 연 대안 문화 공간 '초록옥상'이다. 이름처럼 바닥이 초록빛으로 칠해진 이 옥상에선 이날 '잉여전'이란 제목의 이벤트가 열렸다. 요즘 10~30대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떠오른 '잉여'를 주제로, 작업하다 남는 '잉여품'을 가져와 여는 전시였다. 독립 큐레이터 심안(28), 작가 백수혜(27), 디자이너 릴리 정(26)씨가 기획했다.

지난 5일 서울 보광동 게스트하우스 ‘HA;US’ 옥상에서 열린 싱어송라이터 남승호와 박정미의 콘서트. 외국인을 포함한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고 있다. 건물 옥상을 옮겨 다니며 문화 이벤트를 여는 ‘옥상유랑단’이 기획한 공연이다
지난 5일 서울 보광동 게스트하우스 ‘HA;US’ 옥상에서 열린 싱어송라이터 남승호와 박정미의 콘서트. 외국인을 포함한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고 있다. 건물 옥상을 옮겨 다니며 문화 이벤트를 여는 ‘옥상유랑단’이 기획한 공연이다. /박진수 제공
#2. 지난 5일 '우사단 마을'이라 불리는 서울 보광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HA;US' 옥상엔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퍼졌다. 할머니 손을 잡고 온 동네 꼬마부터 노란 머리 외국인까지 관객 서른 명이 어깨를 맞댔다. 건물 옥상에서 매달 문화 이벤트를 여는 '옥상유랑단'이 기획한 세 번째 콘서트 풍경이다. 이날 게스트는 싱어송라이터 남승호와 박정미였다.

건물의 자투리 공간이었던 옥상이 젊은 예술인들의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문래동 대안 예술 공간 '이포'에서는 아예 옥상을 소재로 한 예술 프로젝트 '옥상민국-옥상 끝에서 세상을 외치다'를 열기도 했고, 같은 문래동 미술 공간 '커먼센터'는 8월 말 옥상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진전을 기획 중이다.

잉여 공간…젊은 예술인의 무대로

옥상이 주목받는 직접적인 이유는 젊은 예술가들의 넉넉지 않은 경제 상황 때문이다. 동시에 옥상은 이 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불안한 삶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잉여전'을 공동 기획한 심안씨는 "적어도 200만~300만원 하는 갤러리 대관료를 내기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 옥상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며 "'언포커스트(unfocused·주목받지 못한)된 신세'라는 점에서 무명 예술가와 옥상이 묘하게 닮았다"고 설명했다.

개방성은 '옥상 무대'의 또 다른 매력이다. '초록옥상' 운영자인 문화 기획자 김선문(30)씨는 "옥상은 건물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곳"이라며 "답답한 실내 공연장에선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얼마 전 근처에 문을 연 문화 공간 '17717'의 옥상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옥상 네트워크, 마을을 바꾸다

'커먼센터' 함영준 디렉터는 도심 재생이 활발히 이뤄진 서구 대도시에서 몇 해 전부터 유행한 '루프톱(rooftop·옥상) 문화'가 옥상의 재발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공연 기획자 반기훈(28)씨와 함께 '옥상유랑단'을 꾸린 독립 큐레이터 나혜미(27)씨는 "런던 혹스턴(Hoxton) 지역 등에선 '루프톱 시네마(옥상 영화 상영)' 같은 옥상 이벤트가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런던 유학파인 그는 "한국에 돌아와 이태원 일대 주택을 보면서 서울 한복판에서도 그런 독특한 문화 풍경을 담아낼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이태원에서 첫 '유랑'을 시작한 옥상유랑단은 다음 달엔 성수동 옥상으로 유랑 공연을 떠난다.

옥상 공연은 지역 재생의 촉매로도 작용한다. 젊은 예술가가 찾는 옥상은 대개 노후 주택에 딸린 옥상이다. 자연히 성북동, 이태원, 성수동 등 재개발 대상인 강북의 허름한 동네가 주무대다. 김선문씨는 "옥상 공연은 그 지역 주민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때문에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