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온 화합의 선율… 런던이 열광하다

  • 런던=김기철 기자

입력 : 2014.07.17 00:38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정명훈 지휘·韓 성악가 4명의 베토벤 '합창']

세인트 폴 성당서 런던 심포니 협연… 올해 페스티벌 주제는 서울
정명훈, '형제애' 메시지 담아 연주

지휘자 정명훈.
지휘자 정명훈〈사진〉과 한국 성악가 4명이 이끄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런던 하늘에 울려 퍼졌다. 15일 밤 8시(현지 시각) 영국을 대표하는 명소인 세인트 폴 성당. 찰스 왕세자 부부 결혼식이 열렸고, 처칠과 대처 전 총리 장례식이 거행된 이곳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심포니 합창단이 올랐다. 지난달 22일부터 런던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행사 중 하나였다. 1962년 시작된 이 페스티벌의 올해 주제는 서울. 이날 연주는 극단 여행자의 '햄릿', 김선욱·손열음 리사이틀 등 한국 관련 행사 중 하나이자, 250개 공연이 열린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벤트였다.

티켓은 한 달 전 이미 동났다. 어렵게 구한 티켓을 손에 쥔 관객 2000명이 성당을 가득 채웠다. 내부 높이 68m, 지름 30m가 넘는 돔(Dome)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오케스트라와 런던 심포니 합창단은 인류의 형제애를 노래한 베토벤 최후 교향곡을 연주했다. 저녁 햇살이 돔 아랫부분을 비추며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한층 아래 지하에 넬슨 제독 무덤을 비롯, 영국의 6·25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는 세인트 폴 성당에서 듣는 베토벤 '합창'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폴 거진(Guddgin)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위원장은 공연 전 "서울이 올해 페스티벌 주제이고,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떠나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와 형제애를 노래하는 '합창'을 연주해달라고 정명훈 지휘자에게 부탁했다"고 밝혔다. 정명훈도 이날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계가 형제처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합창'을 세인트 폴 성당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세인트 폴 성당은 1945년 2차대전 종전 기념 예배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베토벤 '합창'은 까다로운 레퍼토리였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천장으로 올라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뭉개졌다. 얼추 계산해도 잔향(殘響)이 5초 넘게 이어졌다. 정명훈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여느 콘서트홀 연주처럼 오케스트라를 몰아세웠다. 4악장 들어 베이스 박종민이 "오, 형제여, 이런 소리가 아니오" 하면서 '환희의 송가'로 이어지는 부분을 노래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15일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정명훈 지휘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연주됐다. 강요셉, 박종민, 캐슬린 김, 양송미 등 한국 성악가 4명이 독주자로 나섰다.
15일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정명훈 지휘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연주됐다. 강요셉, 박종민, 캐슬린 김, 양송미 등 한국 성악가 4명이 독주자로 나섰다. /에이투비즈 제공
박종민은 지난 9일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주연을 맡은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라 보엠'에 철학도 콜리네로 데뷔, 현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테너 강요셉, 소프라노 캐슬린 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가 피날레를 이어갔다. 강요셉 등 3명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작년 말 메이저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낸 베토벤 '합창' 실황 음반에 참여한 독주자들이다. 한국 지휘자와 성악가들이 주연으로 참여한 '합창'은 성당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