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절망에 찬 목소리… 그 존재감에 압도되다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4.06.09 01:01

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연광철이 ‘마르케 왕의 독백’을 부르고 있다
연광철이 ‘마르케 왕의 독백’을 부르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평범한 아리아도 그가 부르면 특별해졌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2막 '마르케 왕(王)의 독백'. 조카이자 충직한 신하인 트리스탄이 왕비인 이졸데와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부르는 아리아다.

'정말이었던가? 이럴 수가? 저 사람을 보라, 그는 진실한 남자 중에서도 최고요, 친구 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베이스 연광철(서울대 교수·사진)은 바닥 모를 심연까지 내려가 지옥 근처를 서성이는 마르케 왕의 절망을 목소리 하나에 담아냈다. 쉽지도, 대중적이지도 않은 선율인데도 그가 입을 열면 공기 흐름부터 달라지는 것 같다.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 정기연주회 전반부는 바그너에게 바쳤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2막 마르케 왕의 독백, 3막 전주곡에 이어 이졸데의 아리아 '사랑의 죽음' 등 이 작품의 '눈대목'을 보여줬다. 공연 시간만 4시간이 훌쩍 넘는 대작의 하이라이트 40여분 분량을 모았지만, 원래 하나인 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아니라, 마르케 왕이 주인공인 오페라를 보는 것처럼 연광철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두 달 전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파르지팔'(구르네만츠 역)과 이달 드레스덴 젬퍼오퍼의 '시몬 보카네그라'(코포 피에스코 역)에 나선 연광철은 유럽 무대에서 가장 환영받는 베이스 가수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 빈의 폴크스오퍼와 바르셀로나 리세우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지낸 베르트랑 드 비이(49)는 KBS 교향악단의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후반에 연주한 포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라벨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까지, 최근 들어본 KBS 교향악단의 연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 피날레인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대신했는데, 원래대로 소프라노를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작년 새 지휘자 요엘 레비를 맞아 변신을 모색하는 KBS 교향악단의 가능성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