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첫 무대처럼 설레다, 경력 60년 名唱조차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4.06.01 23:55

'완창판소리' 30년 특별공연

"앞의 명창들이 다 잘했는데, 늙은 내가 올라왔소. 좀 잘못해도 용서해주시오."

만 여든일곱 박송희 명창이 흰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섰다. 고수 김청만(68)에게 눈짓한 박 명창은 부자가 된 흥보집에 찾아와 놀보가 심술부리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야 흥보야! 너는 형제간이라 내 속 잘 알지? 권주가(勸酒歌) 없이 술 안 먹는 줄 너 잘 알제." 흥보가 난처해하자, 놀보가 "제수씨 곱게 꾸며논 김에 권주가 한마디 시켜라"하고 성질을 부린다. 박송희 명창은 심술 가득한 놀보와 순진한 흥보, 그리고 놀보에게 "여보시오, 시숙님. 제수더러 권주가 하라는 말 고금천지 어디가 보았소"하며 대드는 흥보 아내까지 1인 3역을 요리했다. 부채 하나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아마 현역으로 뛰는 세계 최고령 가객(歌客)에 들어갈 것이다. 31일 오후 국립극장에서 열린 '완창판소리' 30년 특별공연에서다.

만 여든인 성창순 명창은 데뷔 무대라도 선 듯, 눈을 질끈 감고‘심청가’눈대목을 불렀다.
만 여든인 성창순 명창은 데뷔 무대라도 선 듯, 눈을 질끈 감고‘심청가’눈대목을 불렀다. 목이 말라 연거푸 물을 찾을 만큼 긴장한 모습이었다. /국립극장 제공
이날 무대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5명 모두가 20분 간격으로 등장, 판소리 다섯바탕의 '눈대목'을 선보이는 드문 자리였다. 성창순(80), 남해성(79), 송순섭(75), 신영희(72) 등 소리 경력 평균 50~60년의 명창들이다. 그런데 데뷔 무대라도 서듯, 모두 긴장했다. 첫 순서로 나와 '심청가' 눈대목을 부르던 성창순 명창은 "북은 괜찮은디, 소리는 글쎄…" 하더니 "이거 먹어도 괜찮은 물인가"하며 대접을 들이켰다. 1984년 12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첫 무대에 섰던 관록의 성 명창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수궁가'의 남해성 명창도 "나오기는 했는데, 무섭습니다. 여긴 귀명창들이 많아, 잘못하면 큰일낭께"했다. '적벽가'의 송순섭 명창도, '춘향가'의 신영희 명창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흔, 여든의 명창들이 내는 소리는 젊은 날 쨍쨍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판소리의 품격과 멋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500석 남짓한 달오름극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도 우리 가락의 명맥을 잇기 위해 평생을 버텨온 명창들의 힘겨운 삶을 헤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