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샛별 위해 '바람잡이' 선생님 되렵니다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4.05.22 00:10

르완다 어린이 돕는 후원 음악회서 첼리스트 유지인·피아니스트 임일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무대 올라
"음악은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두 달 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 독주회에서 바로 앞자리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를 봤다. 카리스마 넘치는 바이올린 여제(女帝)가 이날은 아이돌 그룹 소녀 팬 같았다. 시프가 마지막 연주를 끝내자마자 벌떡 일어서더니, 박수를 치면서 '브라보'를 외쳤다. 그것도 모자라 두 손가락으로 입술을 모아 '휙' 하는 소리를 내며 환호까지 보냈다. 분위기를 띄우는 영락없는 '바람잡이'였다. 20일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만난 정경화는 "그날 연주가 너무 훌륭해서 흥을 좀 냈다"고 했다.

정경화가 다음 달 예술의전당에서 열두 살 첼리스트 유지인과 열세 살 피아니스트 임일균과 함께 한 무대에 오른다. 아프리카 르완다 어린이를 돕기 위한 후원 음악회 '그래도, 희망'. 정경화는 "음악회 취지도 그렇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서 함께 연주하면서 자극을 주고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음악 영재들을 북돋아주는 '바람잡이' 역으로 손주뻘 아이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된 것.

정경화는 어린 영재들에게 자극을 주는 ‘바람잡이 역을 자처했다. 다음 달 르완다 어린이 돕기 후원 콘서트에서 손주뻘 유지인(첼로·왼쪽), 임일균(피아노·오른쪽)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정경화는 어린 영재들에게 자극을 주는 ‘바람잡이 역을 자처했다. 다음 달 르완다 어린이 돕기 후원 콘서트에서 손주뻘 유지인(첼로·왼쪽), 임일균(피아노·오른쪽)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윤동진 객원기자
"일균이는 신수정(전 서울음대 학장) 선생에게 배웠는데, 재작년 대관령음악제에서 보자마자 음악성이 단연 눈에 띄었다." 이번 음악회에선 드보르자크 소품을 협연한다. 일균이는 "예술의전당 같은 큰 무대에서 그것도 정경화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는 게 꿈만 같다"고 했다. 2011년 음연·음악춘추 콩쿠르를 휩쓸고, 독주회까지 가진 영재 피아니스트다.

정경화의 반주자 케빈 케너와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는 유지인은 첼리스트 정명화에게 배웠다. "4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학교에서 처음 봤는데, 이렇게 재주 있는 애가 있나 싶었다." 정경화는 "음악성은 아무리 어려도 눈에 띈다"고 했다. 지인이는 "친구들이 정 선생님과 연주를 한다니까, 정말 부러워한다. 정 트리오는 교과서에도 우리나라를 빛낸 인물로 나오는데…"라고 했다. 정경화는 "나도 어릴 때 당시 가장 큰 명동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주했는데, 사람들이 가득 찬 무대에서 연주하니까 신났다. 요즘 가보니 손바닥만 한 극장이더라"라고 했다.

정경화는 케빈 케너와 슈베르트 소나타를,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교수)과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를 연주한다. 슈베르트 3중주는 연주 시간만 50분 가까운 대곡. "몇 년 전 실내악 콘서트에 갔다가 감명 깊게 들었는데, 손가락 부상 때문에 엄두를 못 냈다. 양 교수 아버님인 양해엽 선생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는데, 이번에 함께 연주를 하게 됐다."

정경화는 오는 28일엔 명동성당에서 치유 음악회 '그래도, 사랑'을 갖는다. 세월호 참사로,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 아픈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무료 음악회다. "음악은 우리가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10여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때 연주할 수 있느냐고 묻길래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 전날 저녁, 혼자 관 앞에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아버지와 나만의 작별 의식이었다. 연주가 끝날 때쯤, 슬픔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동성당 연주회는 'G선상의 아리아'로 시작, 바흐 무반주곡 '샤콘느'와 프랑크 소나타로 이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어린이, 미래, 생명'을 위한 헌정음악회, 6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