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9 17:30
세계적인 발레학교인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최초로 한국인 남학생 합격자가 탄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소속의 열여섯 살 전준혁 군이다. 콧대 높은 로열발레학교에서 동양인 남학생에게 전액 장학금까지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영국 로열발레학교는 발레 전공자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꿈의 학교다. 발레라는 장르가 동양인에게 여전히 폐쇄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 보니 그들의 합격 기준에 들어가려면 서양인들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 발레의 어머니로 불리는 니네뜨 드 발루아가 설립한 이 세계적인 학교에 한국인 합격생이 거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소속의 전준혁 군의 입학 소식은 큰 화제가 되었다. 동양인 남자로서는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까지 받았고, 심지어 단기 커리큘럼이 아닌 3년 코스의 최고 과정이다.
“장학금은 최초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국인 학생이 두세 명 정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분들은 여자분들이었고 단기 과정을 이수한 경우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굉장히 조건이 까다로워서 시험을 봐야 들어갈 수 있지만요.”
9월 입학을 앞두고 합격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준혁 군을 만났다.
교장에게 입학 제의 받아 합격
준혁 군이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지난 2월에 열린 프리 드 로잔 콩쿠르에 출전해 파이널리스트까지 올랐던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장에 있던 로열발레학교 교장 크리스토퍼 포우니의 눈에 든 것이다.
“로잔 콩쿠르가 끝나고 여러 학교들로부터 제안서를 받았어요. 파이널리스트까지 올라서 인정을 받은 셈이거든요. 생활비를 대준다는 학교가 세 군데나 있었어요. 가족회의가 열렸고 고민을 했죠. 이왕이면 영국 로열발레학교 같은 좋은 곳에 가고 싶은데, 이메일 어드레스도 하나 없어서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메일이 하나 온 거예요. ‘영국 안 오고 싶니? 내가 영국 로열 교장이다. 입학을 제안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메일이요. 너무 기뻐서 그날 온 가족이 잠을 못 잤어요. 바로 답장을 보냈죠. ‘우리 진짜 관심 있다고’요.”(웃음)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까다롭다는 학교에서 오디션 없이 입학을 허가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왔는데, 학비가 걱정이 됐다. 1년 수업료만 무려 5천9백만 원. 기타 체류비까지 생각하면 고민이 되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정말 용감하게 메일을 다시 보냈어요.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 혹시 장학금을 줄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5분 만에 답장이 왔어요. 오디션을 보지 않고 무시험으로 합격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데,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교장 입장에서는 너무 당황스러웠겠죠.(웃음) 외국 아이들에게는 장학금을 주는 경우가 드물지만 알아봐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사흘 뒤에 다시 메일이 왔어요. ‘축하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장학금을 주겠다. 그것도 전액으로’라고요.”
사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준혁 군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영역에 최선을 다한 준혁 군의 첫 번째 꿈이 근사하게 이루어졌다.
4살 때 형 따라 시작한 발레
준혁 군이 발레를 접한 건 4살 때다. 두 살 터울인 형의 발목이 돌아가서 교정을 위해 발레를 배운 것이 계기였다. 많은 둘째들이 그러하듯 준혁 군 역시 ‘형 따라 얼떨결에’ 본인의 일생을 두고 할 일을 시작했다.
“고모 세 분이 모두 발레를 전공하셨어요. 그중 고모 한 분이 발레학원을 운영해서,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조카 무료 수업으로요.(웃음) 집이 가깝기도 했고 이런저런 사정이 맞았어요. 사실 4살이면 너무 어리잖아요. 키가 작아서 바에 닿지도 않는 꼬맹이였지만, 형 따라 가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죠.”

가족에게 배웠으니 편하게 다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단다.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발레 선생님인 고모는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도 혹독하게 조카를 대했다. 동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외우지 못하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거의 매일 혼났어요.(웃음) 결과적으로는 고모들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죠. 아무래도 더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사람들 보는 시선이 있으니까요. 제가 몸치인데, 발레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로는 더욱 성실하게 했어요.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요.”
그렇게 발레에 재미를 붙인 준혁 군은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어렸을 때 상을 받긴 했는데, 그땐 귀여워서 주신 것 같아요.(웃음) 발레에 재능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몸치거든요. 6살 때 처음으로 콩쿠르에 나갔는데,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무대 위에 올라갔는데 동작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때 고모가 앞에서 가르쳐주셔서 하긴 했는데, 난감하고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때 동상을 받았어요. ‘내가 이렇게 못해도 상을 받는구나’ 하면서 좋아했어요.”(웃음)
아직도 생생한 그 콩쿠르 덕분에 준혁 군은 좋은 습관이 생겼다. 어떤 콩쿠르든 나가기 전에 완벽하게 순서를 기억하면서 스스로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다.
멈출 수 없는 발레의 매력
형 따라 얼결에 시작한 발레지만 준혁 군은 그 매력에 완전히 빠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스로 발레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부모의 욕심이나 강요가 아닌 100% 자기 선택이었다.
“진짜 그만두고 싶거든요.(웃음) 근데 이상하게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발레를 하면 숨이 멎을 것 같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하는데 다음 날 되면 또 하고 있어요.(웃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안 느는 것 같은데, 3개월 전 모습만 봐도 ‘이 머저리는 뭐지? 왜 저렇게 못하지?’ 하면서 보게 돼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실력이 늘어난 건데, 이건 늘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예요. 그게 발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준혁 군이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안 되던 동작이 될 때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발레인 것 같단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발레만의 기쁨이라고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무대 위에서 동작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도 자기만이 느끼는 최고의 경지다.
“동작을 하다 보면 내가 아닌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제가 제 손을 보는데, 뒤에서 CCTV로 제 뒷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무언가 조작 키로 제 몸을 조작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동작을 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기분이 있어요.”
치열한 한예종에서의 시간들
아이 예능 교육을 시키려면 집안 기둥이 하나 뽑힌다는 말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기본적인 수업료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이 많이 든다. 준혁 군은 고모들에게 배우면서 수업료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경제적인 부담에서 완벽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발레를 전공으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정말 하고 싶고 의지가 있으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어요. 분야별로 우수한 영재들을 뽑아서 체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물론 이곳에 들어오는 것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에요.”
준혁 군은 한예종이 처음 영재를 모집할 때 단원이 된 후로 8년째 수업을 받고 있다. 일 년에 2~3일 정도만 쉬고 거의 매일 출석하는 강행군이다. 평택이 집인 준혁 군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한예종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김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고 있는 준혁 군은 한예종에서의 치열했던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재능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접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재능과 의지만 있으면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요즘은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니까, 가난한 아이들도 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어요. 물론 재능이 기본이겠지만요.”
준혁 군은 삼성장학재단의 장학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후원을 받으면서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뜻이 있으면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는 것이 준혁 군의 소신이다.

로열발레단 주역이 꿈
178㎝인 준혁 군은 아직 키도 더 자라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9월 입학을 앞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 할 유학 생활에 대한 부담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아무도 관심 없는데 제가 혼자 괜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한예종에 함께 다니는 형들이 ‘잘될 거야’라고 응원하면서 말해주면 힘이 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영국 로열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로열발레단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은 빠르면 7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준혁 군은 이왕 학교에 입학했으니 교육과정을 잘 이수하고 로열발레단에 들어가 주역까지 꿰차고 싶다고 한다.
“그들의 콧대가 정말 장난 아니게 높으니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죠. 이왕 가는 것, 열심히 해서 제가 한국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 (남학생으로는) 처음 입학을 했으니까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잖아요. 이게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의 기회도 될 수 있고요.”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는 준혁 군의 몸과 포즈는 아름다웠다. 포즈를 취하던 준혁 군은 “멋진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 상태는 만족이 안 된다”면서 연습을 위해서 한예종 안무실에 가야 한단다. 공연이 있든 없든 매일 4시간은 기본적으로 연습을 한다는 준혁 군. 자기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 친구의 모습에서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임언영 기자 |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