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14 00:28
유럽 무대 활약하는 베이스 전승현 - 슈투트가르트 극장 종신 단원 출신
2011년엔 '궁정 가수' 작위 받아… 소프라노 헬렌 권 이어 韓 두 번째
하지만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그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슈투트가르트 극장은 물론, 밀라노 라 스칼라, 빈 국립오페라극장, 뮌헨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뛰는 그를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8년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올린 '마술피리'에 자라스트로로 출연한 게 전부다. 그런 전승현이 서울시오페라단이 다음 주 올리는 베버 작 '마탄의 사수'에 나선다. 고승 에레미트 역이다. "베이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해 작품을 정리하는 역할이거든요. 유럽 극장에선 항상 주연급이 이 역을 맡습니다."

전승현의 얘기처럼, 막이 올라가고 2시간쯤 지나야 그를 볼 수 있다. 3막 6장 4~5분 분량이다. "베이스는 존재감이 중요합니다. 음 하나만 내도 빛날 수 있지요. 이런 존재감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연기도 너무 튀면 망합니다. 적정선을 지켜야 하는데, 그게 매번 달라요. 극장이 크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면 망합니다."
전승현은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7년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유럽 진출 기회를 얻었다. 심사위원인 슈투트가르트 극장 부극장장이 그에게 입단 제의를 했다. 1998년부터 이 극장 단원으로 노래하면서 오페라 가수로 경력을 쌓아갔다. 200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노르웨이 선장으로 라 스칼라에 데뷔한 이후, '탄호이저'의 영주 헤르만, 모차르트 '돈조반니'의 기사장으로 잇달아 섰다.
"남이 보면, 순조롭게 살아온 것 같지요? 고생 많았습니다. 2006년엔 10개월 정도 노래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고민하면서 슬럼프를 넘겼지요."
전승현은 유럽에선 아틸라 전으로 통한다. 아틸라는 5세기 훈족을 이끌고 게르만 부족을 공격,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인물이다. "슈투트가르트 극장에선 반대했어요. 터키인들이 이 이름을 많이 쓰거든요. 독일에서 터키인은 외국인 노동자로 무시당하기 쉽거든요. 하지만 아틸라라는 이름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한번 들으면 누구나 기억할 만큼 장점도 있어요." 키 185㎝, 몸무게 120㎏인 그는 아틸라를 떠올릴 만큼 당당한 체구다.
전승현은 올 3월부터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돼 후배들을 가르친다. 유럽 무대에서 한창 활약할 나이에 귀국한 것은 오판(誤判) 아닐까. "베이스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이 황금기라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나가서 노래하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의 호언처럼, 전승현은 '마탄의 사수'를 마친 다음 날 독일행 비행기를 탄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신들의 황혼'에 하겐으로 나서고, 슈투트가르트 극장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바이로이트의 '신들의 황혼' 등이 기다리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와 바이로이트를 자동차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과 공연을 소화할 것같습니다. 한 곳에서 사흘 이상 머무는 날이 없어요. 살이 좀 빠지겠네요."
▷마탄의 사수, 21~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99-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