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플라멩코와 사물놀이의 강렬한 만남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4.01 23:32

피의 결혼

'플라멩코와 굿거리장단이 같은 리듬'이라는 것을 굳이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애쓸 필요 없다. 그 두 가지가 천연덕스럽게 조화하는 이 연극을 보면 그냥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기본 박자가 12박(拍)이다. 말을 노래처럼 뱉어내기도 하고, 눈물을 씻어내기도 하며, 즉흥과 굴곡이 있는 정서 또한 통한다. '얼쑤'나 '올레' 같은 추임새도 자연스럽다.

연극 '피의 결혼'은 라틴 가무(歌舞)가 판소리와 가야금, 심지어 사물놀이와 만나 어우러지는 절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스페인의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1933년에 쓴 원작은 '진정한 휴먼 드라마와 심장의 요동으로 가득 찼다'는 평을 들은 작품이다. 결혼식 날 옛 연인과 함께 도주한 신부와 칼을 품고 그들을 뒤쫓는 신랑의 이야기가 강렬한 색조로 그려진다. 연출가 이윤택은 질주하는 인간의 본능이 빚어낸 이 피의 비극을 한국적 정서로 기막히게 승화시켰다. 감정의 기복을 숱하게 거치는 한(恨)의 정서는 플라멩코의 격렬한 발놀림과 몸짓으로 표현된다. 때론 그 박자만으로도 놀라움과 기쁨, 슬픔과 다급함 같은 온갖 감정을 나타낸다. 모든 배우를 플라멩코 무용수 수준으로 훈련시킨 결과다.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감정은 더욱 상승하고, 춤을 추던 무극(舞劇)은 무속 신앙이 등장하는 무극(巫劇)으로 바뀌어 간다.

연극‘피의 결혼’에 출연한 김미숙(가운데) 등 배우들이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다.
연극‘피의 결혼’에 출연한 김미숙(가운데) 등 배우들이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어머니 역의 김미숙은 서로 다른 두 문화권의 정서가 가장 잘 통하는 곳이 다름 아닌 모성(母性)임을 보여준다. 많은 양의 판소리풍 창(唱)까지 직접 소화한 그는 '무당 수준으로 굿을 할 줄 아는 배우'라고 한다. 최근 외젠 이오네스코 원작의 '수업'에서 좋은 평을 받았던 신랑 역의 이승헌은 얼굴 자체가 일종의 무대라고 할 만한데, 그 위에서 수많은 배우가 연기를 펼치는 듯했다.

이 연극은 이달 중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리는 중남미 최대 규모의 연극제인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에 초청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시간 115분,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