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작 들고… 무대로 돌아온 두 남자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3.09 23:48

-유인촌, 톨스토이 '홀스또메르'
망아지부터 늙은 말까지 소화… 녹슬지 않은 연기력 관객 몰입

-김수로, 고리키 '밑바닥에서'
매춘부·도둑 등 빈민들의 삶… 날선 직설화법으로 무대 장악

연극판으로 돌아온 두 배우가 동시에 진지한 러시아 문학을 무대에 올렸다. 음악극 '홀스또메르'(원작 레프 톨스토이, 연출 김관)의 유인촌(63)과 연극 '밑바닥에서'(원작 막심 고리키, 연출 강민재)의 김수로(44)다. 두 사람 모두 연극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으며 TV와 영화 출연을 통해 스타가 됐으나,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이끌면서 무대에 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둘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유인촌 쪽이 '노장(老長)의 관록'이라면 김수로 쪽은 '소장(少壯)의 재치'에 가깝다. 전자가 '은유와 상징'이라면 후자는 '직설적 화법'이다. 공연 장소는 전자가 새롭게 공연 문화를 개척하는 지역(영등포)인 데 비해 후자는 전통의 공연 장소(대학로)다.

유인촌 '홀스또메르'

"내가 이렇게 늙고 초라한 불구자가 돼버린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홀스또메르'에서 유인촌이 맡은 역할은 사람이 아니라 말[馬]이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가 1997년 국내 초연 때부터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톨스토이 원작의 음악극‘홀스또메르’에서 늙은 말 역할을 맡은 유인촌(왼쪽)과 고리키 원작 연극‘밑바닥에서’중 알코올에 중독된 배우 역으로 나온 김수로.
톨스토이 원작의 음악극‘홀스또메르’에서 늙은 말 역할을 맡은 유인촌(왼쪽)과 고리키 원작 연극‘밑바닥에서’중 알코올에 중독된 배우 역으로 나온 김수로. 모두 러시아 문학을 무대에 올린 작품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뉴시스·뉴스1
홀스또메르는 촉망받는 경주마였으나 사람들에게 학대당한 뒤 늙고 피폐해진다. 극의 대부분을 신음하거나 질주하고, 채찍으로 얻어맞아야 하는 역할에서 유인촌의 표정은 무척 고통스럽다. 때론 어느 정도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혀를 쫑긋 내미는 천진난만한 망아지부터 꼬리를 흔들며 "가려워~ 가려워"라며 신경질을 내는 늙은 말까지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것을 보면, 오랜 공백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연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삶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나니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철학적인 대사처럼,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앞만 보고 질주한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은유다. '고뇌하는 방탕아'인 세르홉스키 공작 역의 김명수, 암말과 요부(妖婦) 역할을 함께 맡은 김선경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가 감칠맛난다.

▷3월 30일까지 영등포 CGV신한카드아트홀, 공연시간 120분(인터미션 포함), 1588-0688

김수로 '밑바닥에서'

"진실이 뭐가 어떻다고? 인간, 그게 바로 진실이야." '밑바닥에서'는 김수로가 연극 제작자로 나서 2011년부터 이어 온 '김수로 프로젝트'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로 불리는 고리키가 1902년에 발표한 희곡이 원작이며, 빈민들이 모여 사는 토굴 같은 지하의 공동 숙소를 배경으로 한다. 김수로는 주연급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배우' 역할을 맡아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알코올 중독자로 나온다.

몰락한 귀족, 매춘부, 도둑, 사기꾼 등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이어가는 빈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인 분장과 화법으로 묘사했다. "세상엔 별별 놈들이 다 권력을 쥐고 있어"라는 등 '홀스또메르'에 비하면 훨씬 직설적인 대사가 많다.

소극장 연극치고는 많은 인원인 18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대사가 끊기는 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복잡하다. 모든 배우의 발성(發聲)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리액션은 뛰어난 편이다. 루카 역의 윤경호, 바실리사 역의 김혜진 등 몇몇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3월 30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4관, 공연시간 100분, 1588-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