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읽는 연극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2.26 23:36

대본 읽어주는 연극 '낭독극'… 지문·해설까지 감정 살려 전달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의 연극 '롤리타' 공연 모습은 독특했다. 의자에 앉은 배우 네 명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대본이었다. 이들은 다른 배우와 눈을 맞추지 않는 대신 자신의 대사에 최대한 집중해 '낭독 연기'를 펼쳤고, 대단히 문학적으로 쓰인 지문과 해설까지도 감정을 넣어 낭랑하게 읽었다.

25일 저녁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낭독 연극 ‘롤리타’ 출연 배우들이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연습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레지나(샬로트 역), 박종용(해설자 역), 박시영(롤리타 역), 서광일(험버트 역) 사진
25일 저녁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낭독 연극 ‘롤리타’ 출연 배우들이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연습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레지나(샬로트 역), 박종용(해설자 역), 박시영(롤리타 역), 서광일(험버트 역). /김연정 객원기자
이날 공연은 세계문학을 낭독극 형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산울림 고전극장 2014'의 네 번째 작품인 '롤리타'(정승현 연출)로, 다음 달 9일까지 계속된다. 이 시리즈는 '김동인 단편선'(박지혜 연출·3월 14~23일)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대웅 연출·3월 26일~4월 6일)로 계속된다. 처음엔 단조로운 듯 진행되던 '롤리타' 무대는 "대답해, 날 사랑하지 않았니?" "네, 그런 것 같아요." "알았다… 내 생명의 빛은 꺼졌다"라는 남녀 주인공의 대사가 교차하는 절정 부분에선 대사의 집중도가 최고조로 높아져 대단한 흡인력을 보였다.

2014년 한국 공연계에서 편당 제작비 수십억 원에 이르는 화려한 뮤지컬의 대척점에는 소박한 '낭독극(朗讀劇)'이 있다. 산울림소극장이 고전을 낭독한다면,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남산희곡페스티벌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낭독 형태로 공연한다. 27일에는 대학생 작가 원소영의 '장롱 속엔 괴물이 산다'가 무대에 오른다. 연극계 대표 배우도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26일 두 번째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준비한 '문화 공연'은 해금·기타 연주를 곁들인 배우 박정자의 낭독극 '영영이별 영이별'이었다. 박정자는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3월 11일)과 인천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3월 27일)에서 역시 낭독극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공연할 예정이다.

낭독극은 연극의 본질적인 요소인 '대사'에 몰입하고, 텍스트와 관객 사이의 다른 요소는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는 무대다. 일각에선 '비용 절감을 위한 방편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라디오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복고풍이 관객의 흥미를 끈다는 해석도 있다. 극작가 김명화씨는 "관객이 활자를 들으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색하는 능력을 키우고, 희곡 특유의 문학성을 향유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