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이토록 외로운 이름, 어머니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2.23 23:03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Ⅴ-눈길'

무대는 어둡다. 높은 막대 위에 등롱(燈籠)이 걸려 있고, 그 아래 한 여인이 소복을 입은 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무대로 걸어 나온다. 어머니와 아들은 발레의 파드되(2인무)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춤을 춘다. 불안한 기타음이 흐르더니 아들이 돌연 사라진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과 북소리가 구슬프게 어우러지면서 혼자 남은 어머니의 춤사위는 격해진다. 이불을 돌돌 말아 하얀 관(棺)처럼 짊어지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무대 위로는 순백의 눈꽃이 무수히 떨어지고, 어머니의 춤은 고독의 절규를 넘어선 법열(法悅)로 승화하는 듯했다.

김복희무용단이 어머니의 외로움을 몸짓에 담은‘삶꽃 바람꽃 V-눈길’.
김복희무용단이 어머니의 외로움을 몸짓에 담은‘삶꽃 바람꽃 V-눈길’. /김복희무용단 제공
지난 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된 김복희무용단의 '삶꽃 바람꽃 V-눈길'〈사진〉이다. 김복희(65) 한양대 교수의 '정년' 기념 공연이지만 김 교수는 '창작 예술가에겐 정년이 없다'며 이 타이틀을 뺐다. 이청준 소설 '눈길'에서 영감을 얻어 안무하고 직접 출연한 이 작품에 대해 김 교수는 "부모와 자식의 존재 가치가 해체돼 가는 오늘날, 어머니의 가슴 깊이서 솟는 외로움의 소리를 몸의 소리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주제가 제대로 전달된 듯, 객석의 박수 소리가 유난히 컸다.

김 교수는 이화여대를 막 졸업한 1971년 대학 동문인 김화숙(현 원광대 교수)과 함께 '김복희-김화숙 현대무용단'을 창단했다. 이후 그는 한국적 현대무용의 외길을 걸으며 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남사당패 이야기로 바꾼 1999년 초연작 '천형(天刑), 그 생명의 수레'도 무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