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홀딱 벗은 古典… 자꾸 보게되는 시계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2.20 00:02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의 성(性)이 뒤바뀐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왼쪽·이화정)와 줄리엣(남윤호).
원작의 성(性)이 뒤바뀐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왼쪽·이화정)와 줄리엣(남윤호). /코르코르디움 제공
팝아트 풍의 원색적인 무대에 후드티와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나타나 서로 치고받는 난장판을 벌인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각색·연출 양정웅)은 대단히 강렬하고 난폭하며 전복적인 방식으로 셰익스피어 원작을 재해석한다. 남녀 주인공이 '밀당'(밀고 당기기)할 겨를도 없이 눈이 맞은 뒤에는 10차례 이상 진한 키스신과 한 차례 섹스신이 등장한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남녀 주인공의 성(性)을 바꿨다는 점. 로미오(이화정)는 선머슴 같은 건달패 여성으로, 줄리엣(남윤호)은 모친의 과보호를 받는 남성으로 나온다. 여성은 적극적으로 프러포즈를 하고 나서며, 남성은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 사랑을 음미한다. 서로의 육체를 비디오카메라로 탐닉하듯 비추면서 "난 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한테 미쳤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의 극적인 표현이다.

단, 여기까지다. 국내 몇 안 되는 스타 연출가인 양정웅의 이 연극은 후반부로 갈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자해(自害) 연기가 지나치게 잦고, '죽음'에 집착하는 듯한 표현은 내러티브 전개에 브레이크를 건다. 정사(情事) 연기는 감미롭다기보다는 고통스럽다. 수시로 등장하는 슬랩스틱과 전라도 사투리 개그는 어딘가 뜬금없다.

기성 가치를 거부하고 파멸을 향해 출구 없이 질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196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연상케 하지만, 그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진부하기도 하다. 공연 끝나기 20분쯤 전부터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관객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고전의 '과(過)해석'이 낳은 뜻밖의 지루함이었다.

▷공연시간 115분, 23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02)889-3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