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2014] 전쟁과 평화·백조의 호수·봄의 제전… 文化 强國 부활 알린 종합세트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2.11 01:57

[개막식으로 본 러시아 예술]

영화 제작자 에른스트 연출
문학·음악·발레·미술 망라… 연기자 3000명·의상 6000벌
사회주의 국가 이미지 벗고 문화 강국 자부심, 세계에 과시

지난 8일 새벽(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피슈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소치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의 나라' 러시아의 부활을 알린 한 편의 거대한 마스터피스(걸작)였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러시아가 보여줄 수 있는 고품격 순수예술이 스타디움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환상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됐다는 것이다.

'문화 대국(大國)' 부활 선언

영화 제작자 콘스탄틴 에른스트의 연출로 160분 동안 펼쳐진 이번 개막식의 주제는 '러시아의 꿈'이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고 말한다. 러시아어의 33개 알파벳에 해당하는 상징을 열거한 중에서 11명이 문화예술의 거장(巨匠)이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문학(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체호프), 음악(차이콥스키), 미술(칸딘스키·말레비치·샤갈), 영화(에이젠슈테인) 등 문화 예술계 스타들이 소개됐다.

(왼쪽 사진)옛 소련 때의 프로파간다 미술의 상징물들이 분해된 모습으로 허공에 떠오르고 있다. (오른쪽 사진)지난 8일 새벽(한국 시각) 열린 소치올림픽 개막식에서 발레단이 톨스토이 소설‘전쟁과 평화’의 무도회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 사진)옛 소련 때의 프로파간다 미술의 상징물들이 분해된 모습으로 허공에 떠오르고 있다. (오른쪽 사진)지난 8일 새벽(한국 시각) 열린 소치올림픽 개막식에서 발레단이 톨스토이 소설‘전쟁과 평화’의 무도회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신화 뉴시스·AP 뉴시스
공연 연출가인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러시아의 문화적 파워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작심하고 만든 개막식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제정(帝政) 러시아 시절부터 내려온 고급문화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의도가 물량 공세에서 읽혔다는 것이다. 이날 공연에 출연한 연기자는 3000여 명, 쓰인 의상은 6000여 벌이었으며, 총비용은 런던올림픽 개막식 비용인 2700만파운드(약 475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순수예술은 힘이 셌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대중예술을 주제로 치밀하게 구성된 연극'이었다면, 이번 소치올림픽 개막식은 '순수예술을 기반으로 일사불란하게 펼쳐진 군무(群舞)'에 가깝다는 말을 듣는다. 한 공연 제작자는 수백 명의 군인이 함께 발레풍의 춤을 추다 '전쟁과 평화'의 무도회로 바뀌는 장면에 대해 "우리 같으면 그렇게 여러 명이 춤추는 장면을 넣으려 해도 인력이 없어 못 할 텐데, 참 러시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찬사를 보냈다.

조용신 CJ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예술감독은 "19세기 톨스토이의 문학, 20세기 초 칸딘스키의 모더니즘, 옛 소련 때의 프로파간다 미술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양식이 현대적인 연출과 조화를 이뤘다"고 말했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디테일

'물량 공세'만으로 밀고 나간 것은 아니라는 데 이번 개막식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설도윤 한국뮤지컬협회장은 "순식간에 바람을 넣어 형상을 갖추는 모크업(mock-up) 벌룬(실물 모형 풍선)으로 러시아 특유의 원색 건축 양식을 동화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어로 '사랑'을 뜻하는 '류보프'라는 이름의 소녀가 우랄 산맥과 바이칼 호수, 캄차카 반도 같은 조형물 사이로 날아다니는 장면은 대단히 몽환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거대한 자부심의 표현 못지않게 개막식 곳곳에서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살려냈다는 것이다. 허공에 그린 오륜기가 '사륜기'로 둔갑한 뜻밖의 실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다 보니 나온 사고지만, 오히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너그러운 시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