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톡톡] '일본의 베토벤'… 알고보니 18년간 대리 작곡시켜

  • 도쿄=안준용 특파원

입력 : 2014.02.06 00:45

일본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
'일본의 베토벤'이라고 불리던 청각장애 음악가가 지난 18년간 발표해 온 음악이 자신의 곡이 아니라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의 인기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佐村河內守·51·사진)는 히로시마 출신의 피폭 2세로, 35세 때 완전히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10만장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린 대표작 '교향곡 제1번 히로시마' 등 다수의 곡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2007년에는 음대 진학에 실패한 뒤 홀로 작곡법을 익힌 사연 등을 담아 자서전도 냈다. 미국 언론은 "장애를 극복하고 절대 음감으로 작곡한다"며 그를 '현대의 베토벤'으로 소개했다. 베토벤도 청각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교향곡 5번('운명')을 작곡했다.

하지만 사무라고치는 5일 오전 변호인을 통해 "나는 그간 음악의 기본 구성과 이미지만 제안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작곡가가 선율, 화성 등을 만들어 작곡했다"며 "팬들과 관계자들을 실망시킨 데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사무라고치는 청력을 완전히 잃기 3년 전인 1996년쯤부터 대리 작곡가를 써왔다. 그를 대신해 작곡한 사람은 피아니스트이자 대학 강사 아라가키 다카시(新垣隆·44)로 알려졌다.

파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음반사 측은 사무라고치의 음반·음원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예정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중이고, 자서전도 절판 조치와 함께 전국 각 서점에서 곧 회수될 예정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그간 그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데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일본 남자 피겨의 간판 선수 다카하시 다이스케도 대리 작곡으로 드러난 사무라고치의 음악으로 소치 동계올림픽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다카하시는 이번 대회에서는 기존 곡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대리 작곡자로 알려진 아라가키는 이날 오후 "세상을 시끄럽게 해 죄송하다"며 6일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