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 위해 피아노 앞에 앉다

입력 : 2014.03.10 17:41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정명훈이 한없이 부드러워질 때가 있다. 바로 가족 앞에서다. 그의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은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손녀 사랑은 그보다 더한가보다. 손녀딸들을 위한, 그의 생애 첫 피아노 음반 이야기.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정명훈. 그의 출발은 피아노였다.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형제 대부분이 음악을 하는 환경에서 자라며 음악과 친해졌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이미 ‘신동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다. 그의 천재성은 1974년 3대 국제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그는 지금은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인 스타니슬라브 이골린스키와 공동 2위를 차지해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당시만 해도 어떤 영역이든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커녕 해외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정명훈의 귀국 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정명훈으로서의 삶은 길지 않았다. 2년 후인 1976년 뉴욕 청소년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 데뷔했고, 1979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보조지휘자를 거쳐(당시 상임지휘자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였다), 2년 후에는 부지휘자가 됐다. 이후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런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피아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정명훈은 지휘자로 승승장구할수록 피아니스트와는 먼 삶을 살게 됐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을 때는 누나인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정트리오로 실내악 무대에 나설 때나, 정말 특별한 이벤트를 할 때 정도였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지가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지휘자로서는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면, 피아노는 아마추어가 됐어요. 어떤 면에서 음악가는 일평생 마음속에 아마추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아요. 프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접근하기 쉬운데, 음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품격을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지휘자로 전향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기악의 세계에서 피아노란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불린다. 혼자 연주하기 힘든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달리, 피아노는 온전히 혼자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두 직업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음악가라는 것이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좋은 것은 성악이죠. 그렇지 않으면 악기를 통해 소리를 내야 하는데, 지휘자만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거예요.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가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는 자기 자신과 싸웠죠. 하하하.”


그렇다면 왜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가 지휘자가 됐을까.


“훌륭한 작곡가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굉장한 오케스트라 곡들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들을요. 특히 말러의 교향곡이 그랬지요. 그래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그러나 피아노라는 악기는 자신과 제일 친한 친구이고, 제일 사랑하는 친구예요.”


피아니스트의 삶은 고독하다.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다수의 연주자와 더불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정명훈의 삶도 바뀌고 성격도 바뀌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당시에는 피아노하고만 하루 종일 싸웠어요. 연주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방에만 들어가서 피아노와 있고. 그러니 아내와 같이 지낼 시간도 없었죠. 와이프보다도 피아노를 사랑하는 것같이 사니까 아쉬울 법도 하죠. 그런데 지휘하면서 단원들과 말을 해야 하니 점점 말도 많아지고, 말하는 것도 편해졌어요. 아내로서는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아진 거죠.”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정명훈

가족 사랑이 가득 담긴 음반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서일까.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또 정트리오 멤버로 수많은 명반들을 만들어왔지만, 그에게는 독주 피아노 앨범이 없다. 그렇기에 정명훈의 첫 피아노 앨범 발매는 꽤 이슈가 될 만한 뉴스다. 더욱더 지휘자로 견고한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이젠 피아노가 ‘외도’인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작은 이랬다. 그의 아들인 재즈 기타리스트 겸 ECM 레이블의 프로듀서인 둘째 아들 정선 씨가 아버지에게 첫 피아노 음반을 제안했다. 마침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딸들을 위한 음악을 생각했던 터라, 정명훈은 아들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래서 나온 음반이 이름도 심플한 <정명훈, 피아노>이다.


“손녀들을 위해서라도 피아노 레코딩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우리 형제들이 다 음악을 했기 때문에 저는 태어나기 9개월 전부터 음악을 들었죠. 일평생 음악 외에 다른 것을 할 거라는 생각도 없었죠.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일찍 시작할수록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녹음했어요. 앨범 레퍼토리는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곡들 위주로 골랐죠. 아이들이 듣자마자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곡들이요.”


거장의 피아노 앨범에는 어떤 곡이 수록됐을까. 손녀딸을 위한 음반이라 그런지, 수록된 10곡 모두 클래식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음악들이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아라베스크’…. 그렇다고 유명한 음악만을 모은 건 아니다. 모든 곡에는 정명훈의 특별한 추억이 담겨 있다. 드뷔시의 <달빛>은 둘째 손녀 루아를 위한 곡인데, ‘루아’는 달이라는 뜻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G♭장조>는 큰 아들 결혼식에서 그가 직접 연주한 곡이다.


“루아가 음악을 벌써 굉장히 좋아해요. 한 살이 되기도 전부터 레코딩을 듣고, 비디오도 보고 합니다. 두 달 전에 봤을 때는 엄마가 켜준 베토벤 심포니 NO. 5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거예요.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빠빠빰 뿡’이라고 외칩니다. 슈베르트 곡에는 음악을 통해 기도한다는 뜻이 담겼어요. 그래서 그 곡이 가장 연주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는 건, 대부분 가족들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정명훈은 정선 씨 부부와 함께 ECM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당시 그는 며느리 신예원 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란히 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가족’입니다. 이번 ECM을 하게 된 것은 제 둘째 아들인 정선이 이곳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했고, 신예원 또한 ECM과 처음 레코딩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하는데, 재즈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ECM은 재즈도 하고 클래식도 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과 참 잘 맞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해본 적이 없었는데 특별히 이번에 함께할 수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아들 부부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재즈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그는 무대 규모를 떠나 아들, 며느리와 함께 공연하는 것에 굉장한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로 음반 더 내고 싶어

이 음반에는 가족을 위한 음악이 또 하나 있다.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위해 연주한 쇼팽의 <녹턴 C# 단조>다.


“원래 피아노곡인데 바이올린 버전으로 연주하기도 하죠. 누나가 이 곡을 리사이틀에서 종종 연주했는데, 그때 제가 반주를 했어요. 경화 누나는 내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평생 많은 음악가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경화 누나는 정말 뜨거운 열정을 가진 불덩이 같은 사람이죠. 저한테 음악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다.”


또한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리게 했던 중요한 순간 연주했던 곡도 수록했다. 차이콥스키 <사계> 중 ‘가을 노래’로, 그가 과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특별한 곡이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죠. 현지에서는 굉장히 알려진 곡인데 청중들이 특별히 좋아했어요. 그때만 해도 요새 세상과 달라서 콘서트에서, 라디오를 통해 연주 한번 듣는 것이 자신의 삶에 특별한 것이라고 여길 때였죠. 제 연주가 라디오로 생중계됐는데 시베리아에서 그 곡을 들은 청취자가 저한테 전보를 보냈어요. 당신이 꼭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는 그 옛날의 ‘소련’에서 제가 그 전보를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음반은 지난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녹음됐다. ECM의 거의 모든 명반들과 마찬가지로 아이허가 진두지휘했다.


“아이허와는 말이 참 잘 통해요. 녹음하면서 느낀 것이 정말 이분은 듣는 귀가 독특하다는 것이에요. 녹음은 보통 깨끗하고,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기 쉬운데 아이허는 몇 번 쭉쭉 연주한 것 중에서 고르더라고요. 어느 부분이 아름답고 특별한지를 잘 골라내요. 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는데,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녹음하면 기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ECM은 개인적으로 독특한 녹음을 하기 위해 좋은 곳 같아요.”


정명훈은 이번 음반에 대해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했다.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로서의 음반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자랑할 수 있는 대곡이 아닌, 소품으로만 구성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음반에 수록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쉽지 않은 곡이죠. 피아노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음악인데, 이번 음반의 분위기와 안 맞아서 결국 포기했죠.”


피아니스트로 잠시 돌아온 정명훈은 여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지휘자로서 잠시 외도하는 상황이니, 예전과 달리 부담도 덜할 것이다.


“이번 작업이 재밌어 다음번에 하나 더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앨범은 우리 손녀들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앨범이에요. 피아니스트 콘서트 같은 음반으로 쇼팽을 하나 만들까 해요. 그러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겠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당초 두 곡만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앨범에 수록된 10곡 모두를 연주했다. “한번 연주를 시작하면 계속하게 된다”는 그는 천생 피아니스트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두경아 |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