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보이스는 쩌렁쩌렁, 이야기는 땀내 물씬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01.24 00:06

저지 보이스

막(幕)은 철망이다. 철제 계단과 난간이 무대를 상하로 가른다. 낡은 공장이나 감옥을 연상시키는 삭막한 공간이다. 1950년대 미국 뉴저지의 빈민촌에서 시작하는 뮤지컬 '저지 보이스'는 올드 팝의 레퍼토리를 현란한 조명과 안무 속에서 숨 가쁘게 전개하지만, 이 무대장치만은 1990년의 시점에서 극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다.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달을 꿈꿨던 주인공들이 필경 현실의 질곡에선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은유다.

첫 내한 공연인 '저지 보이스'는 미국의 남성 4인조 그룹 '포 시즌스' 원년 멤버들의 이야기를 30여 히트곡과 함께 펼쳐보인다. 2005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전 세계 1750만명이 관람한 이 뮤지컬은 현재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뮤지컬과 세 가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성량(聲量), 정서, 소재다. 뒤의 두 가지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국내 흥행에 한 가닥 의문이 드는 이유다.

뮤지컬 저지 보이스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먼저 성량. 극의 주요 국면마다 등장해 그 자체로 줄거리를 이어가는 포 시즌스의 노래들은 1960년대 주크박스의 단골 메뉴들을 '레 미제라블'의 혁명가에 버금가는 위력으로 증폭한다.

주·조연 할 것 없이 압도적인 가창력과 리듬감을 갖춘 배우들의 기본기 덕이다. 특히 리드 보컬 프랭키 밸리 역의 배우 그랜트 앨미럴이 부른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는 3옥타브 반을 휘젓는 가성(假聲) 창법이 속 깊은 울림을 끌어내는 희귀한 경험을 안겨 준다.

다음은 정서. 포 시즌스는 당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추억의 그룹'이지만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 한국의 관객층에 어떤 호소력을 보여줄지 조금은 의문이다. "우리는 비틀스처럼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1960년대 미국의) 우리 팬들은 노동자거나 그의 연인이었다"는 멤버 밥 고디오의 대사는 그래서 이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마지막으로 소재. 이것은 한국 뮤지컬 팬들이 좋아하는 판타지도 로맨스도 아니다.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았지만, 끝내 가정과 우정 모두에 파열음이 일어났음을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 수컷들의 땀 냄새 나는 이야기다.

프랭키의 아내는 "당신 가정은 저 밖에 있잖아"라며 쏘아붙이고, 그의 딸은 "이제 와서 밀린 아빠 노릇을 하겠다고?"라며 일갈한다. 극 후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좋은 일에도 해당하는 거였다"는 주인공의 회고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3월 23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02)541-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