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0 23:35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타계]
뛰어난 말러 해석으로 명성… 1973년 이화여대서 내한 공연

세계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81·사진)가 20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타계했다.
193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바도는 밀라노 음악원과 빈 음악아카데미에서 지휘와 작곡, 피아노를 공부했다. 1963년 뉴욕에서 열린 미트로풀로스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0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라스칼라 음악감독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등을 거쳤다.
아바도의 경력은 1989년 세상을 떠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맡으면서 정점에 오른다. 독재자로 군림했던 카라얀과 달리, 그는 마에스트로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베를린 필과의 첫 리허설 때, "모두 클라우디오라고 부르십시오. 경칭은 뺍시다"라며 단원들과의 거리를 허물었다. 악단원과 눈을 맞추고 지휘하면서 단원들의 심리를 꿰뚫고 연주자들을 하나씩 납득시키는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카라얀 휘하에서 잔뼈가 굵은 단원들이 아바도에게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다. 몇몇 단원들은 대놓고 아바도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다. 실망한 아바도는 1998년 "앞으론 스키와 요트,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며 2002년 이후 베를린 필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당시까지 수석 지휘자가 세상을 뜨는 일 이외에는 지휘자가 바뀐 적 없던 베를린 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바도는 마음고생을 적잖게 한 탓인지 2000년 암으로 쓰러져 위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아바도는 특히 말러 해석에 탁월한 것으로 평판이 높다. 1968년 라 스칼라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을 때부터 말러 시리즈를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하고,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다. 차세대 음악인 양성에도 힘써 1978년 유럽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1986년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이끌었고, 타계 직전까지 음악감독을 맡았다. 베를린 필을 물러난 직후인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 매년 여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작년 8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상원의원에 임명됐다.
193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바도는 밀라노 음악원과 빈 음악아카데미에서 지휘와 작곡, 피아노를 공부했다. 1963년 뉴욕에서 열린 미트로풀로스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0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라스칼라 음악감독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등을 거쳤다.
아바도의 경력은 1989년 세상을 떠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맡으면서 정점에 오른다. 독재자로 군림했던 카라얀과 달리, 그는 마에스트로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베를린 필과의 첫 리허설 때, "모두 클라우디오라고 부르십시오. 경칭은 뺍시다"라며 단원들과의 거리를 허물었다. 악단원과 눈을 맞추고 지휘하면서 단원들의 심리를 꿰뚫고 연주자들을 하나씩 납득시키는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카라얀 휘하에서 잔뼈가 굵은 단원들이 아바도에게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다. 몇몇 단원들은 대놓고 아바도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다. 실망한 아바도는 1998년 "앞으론 스키와 요트,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며 2002년 이후 베를린 필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당시까지 수석 지휘자가 세상을 뜨는 일 이외에는 지휘자가 바뀐 적 없던 베를린 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바도는 마음고생을 적잖게 한 탓인지 2000년 암으로 쓰러져 위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아바도는 특히 말러 해석에 탁월한 것으로 평판이 높다. 1968년 라 스칼라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을 때부터 말러 시리즈를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하고,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다. 차세대 음악인 양성에도 힘써 1978년 유럽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1986년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이끌었고, 타계 직전까지 음악감독을 맡았다. 베를린 필을 물러난 직후인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 매년 여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작년 8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상원의원에 임명됐다.

아바도는 1973년 3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국내 관객들과 만난 적 있다. 이화여대 강당에서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브람스 교향곡 3번,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지휘했다. 핼쑥해진 얼굴로 지휘대에 올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아바도의 모습은 이제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