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희망을 담은 ‘천상의 하모니’ 들려주다

입력 : 2014.02.09 15:04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와 장애인 후원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종합식품업체 오뚜기가 한자리에서 만났다.


그곳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천상(天上)의 화음이 울려 퍼졌다. 

긍정과 희망을 담은 ‘천상의 하모니’ 들려주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오뚜기봉사단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합창하고 있다.

2013년 11월27일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6시30분 무렵.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공연장 세라믹팔레스홀에서는 아주 특별한 실내관현악단의 초청연주회가 막을 올렸다. 주인공은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이하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였다.


첫 번째 연주곡은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피가로의 결혼’ 서곡. 경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연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 유명하지만 결코 수월치 않은 이 곡을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일반 오케스트라와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하모니에 관객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이날 1시간30분 남짓 펼쳐진 공연에서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모두 12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여인의 향기’, ‘시네마 천국’ 등 명작 영화의 주제곡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도 여러 곡 선사했다. 400여 관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매번 연주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여느 오케스트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슴 묵직한 감동의 물결이 공연장에 넘실거렸다. 특히 오뚜기 직원들로 구성된 ‘오뚜기 봉사단’이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와 함께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로 유명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합창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지난 2007년 시각장애를 가진 음악인들을 주축으로 창단됐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실내관현악단의 역사적인 첫걸음이었다. 사실 비장애인 음악인들도 오케스트라에 도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어떻게 시각장애를 안고도 완벽한 호흡과 화음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일까.

이상재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장
이상재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장

이상재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장(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은 “우리 시각장애인 단원들은 점자 악보로 모든 곡을 암기해 연주하는데, 연습할 때는 일반 오케스트라보다 20~30배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며 “곡의 음, 속도, 뉘앙스를 몸으로 외워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동료의 연주와도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총 19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11명이 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이다. 오케스트라의 양대 축인 이상재 단장과 김종훈 악장(숭실대 겸임교수)도 시각장애인이다. 나머지 8명은 비장애인 연주자들이다. 100%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는 아닌 셈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국내에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필수 악기인 콘트라베이스, 호른, 바순 등을 연주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음악인이 전무하다. 그 때문에 해당 악기를 맡을 비장애인 단원을 기용한 것이다. 또 시각장애인 단원들이 이동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비장애인 단원들이 함께하는 이유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2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쳐왔다. 특히 2011년에는 세계 최고의 연주회장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초청공연을 한 적도 있다. 당시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네 차례나 보낼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모든 단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는 게 바로 카네기홀 공연이다.


이번 세라믹팔레스홀 초청연주회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장애인 재활을 돕는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고 있는 오뚜기가 주최한 행사인 데다, 평소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적은 장애인 80여명을 관객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후원하는 기업이 주최하고,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장애인 관객들이 감상하는 보기 드문 공연이었던 셈이다.


오뚜기는 2012년부터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굿윌스토어(Goodwill Store)’에 자사가 판매하는 주요 선물세트 조립작업 임가공을 위탁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와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오뚜기는 자사 제품을 굿윌스토어에 기부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들이 제품 진열과 판매, 장애인 점심 배식 등을 돕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오뚜기 임직원들은 사내 물품 나눔 캠페인을 통해 모은 각종 물품을 굿윌스토어에 기증도 하고 있다.


이번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초청연주회를 개최한 것도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이었다. 굿윌스토어에서 일하는 장애인 직원들에게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공연 기회와 일자리를 마련해주자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강구만 오뚜기 홍보실 실장은 “세계 장애인의 날(매년 12월3일)을 앞두고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찾던 중에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연주회를 마련하게 됐다”며 “공연을 관람한 오뚜기 임직원들은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실력과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장애인 초대관객들도 특별한 문화체험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세라믹팔레스홀 연주회의 대단원은 이른바 ‘암전(暗轉)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암전 공연은 무대 조명을 끈 채로 칠흑 속에서 연주를 하는 것인데,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뛰어난 연주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다. 또 다른 깊은 뜻도 숨어 있다.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관객과 비장애인 단원들도 ‘시각장애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서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연주를 하는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단지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라는 특별한 타이틀에만 머물러 있을 생각은 전혀 없다. 이 단장은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를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이자 누구나 인정하는 일류 오케스트라로 키워 나가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궁극적인 비전은 노력과 열정을 통해 장애를 뛰어넘은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상재 단장의 말이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상품이에요. 저는 단장으로서 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더욱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여느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더 큰 감동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 공연을 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그 감동을 나누셨으면 합니다.” 


/이코노미 조선
글=김윤현 기자 uny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