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7 03:01 | 수정 : 2013.12.17 11:36
'로버트 인디애나' 展
1964년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한 화가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크리스마스란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날. 화가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LOVE'를 카드에 그려넣었다. 단정한 서체는 어쩐지 재미가 없어 O자를 살짝 기울여 다이내믹하게 만들었다. 이 도안은 티셔츠, 머그컵 등에 광범위하게 응용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미국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Indiana·85)의 대표작 'LOVE'의 탄생 배경이다.

1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막하는 '로버트 인디애나: 사랑 그 이상'은 세간에 잘 알려진 'LOVE' 조각 9점뿐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인디애나의 회화까지 만날 수 있는 기회. 152×152㎝ 캔버스에 숫자 8을 커다랗게 그려넣은 '10월은 바람 속에'(2000)를 비롯해 회화 3점이 나왔다. 갤러리현대 측은 "LOVE 조각의 경우 높이 45㎝ 정도의 소품이 억대를 호가하지만, 회화는 10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밝혔다.
전시에 나온 설치작품 'EAT'는 미국 고속도로 식당 간판으로 자주 쓰이는 'EAT' 도안에 전구를 달아 반짝이도록 만든 것. 인디애나를 입양해 키운 양어머니가 죽기 전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바로 'Eat(먹어)'이다.
'LOVE'로 명성을 얻은 인디애나는, 그러나 'LOVE' 때문에 불행해졌다.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이 작품이 남용되면서 '싸구려 작가' 이미지를 얻게 된 것.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환멸을 느낀 작가는 1978년 메인주 바이널헤이븐 섬으로 이주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인디애나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졌고, 지난 9월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했다. 갤러리 현대 전시는 내년 1월 12일까지. (02) 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