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6 11:30
금난새에게 경계란 없다. 미국 맨해튼에서 뮤직 페스티벌을 주최하는가 하면, 농어촌희망청소년오케스트라(KYDO)의 지휘자로 나서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금난새라서 잘할 거야”라는 기대 어린 시선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신임 교장의 연설 시간. 학생들은 새로운 교장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조회에 섰다. 그런데 연설하는 교장의 두 손에는 온갖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충분히 훌륭하지만, 저는 이 학교가 더 좋은 학교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아까 오는 길에 휴지가 널려 있더군요. 이렇게.”
그리곤 그 전단지들을 하나씩 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봤고, ‘교장이 어딘가 불편한가?’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환경 미화에 대한 긴 잔소리를 시작할 태세였다. 그러나 교장의 다음 말은 아이들을 더 당황케 했다.
“첫째,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선생님)의 잘못이에요. 왜? 학교에 쓰레기통이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교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학생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휴지통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 해요. 그건 하지 않고 왜 지저분하게 하냐고 야단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저는 교사들과 함께 여러분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금난새 교장의 연설은 간결하고 인상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능력이다.
‘금난새 교장’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휘자 금난새. 그는 매우 특별한 음악인이다. 음악인이면서 기업인이고, 또 기획자이자 교육자다. 그는 현재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를 맡고 있으며,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CEO고, 창원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맨해튼 페스티벌 음악감독, 라움아트센터의 예술감독, KYDO 예술감독 등 수많은 직함을 가졌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에서 그는 지난 10월 10일 모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무대가 아닌 학교 강단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연주 일정도 빠듯한데, 이번에 또 하나의 직함이 추가됐어요. 어떻게 서울예고 교장직을 맡게 됐나요?
서울예고 교장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제가 교장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어요. 서울예고 동문으로, 개교 6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지휘를 했는데, 그때 이사장님이 제 연주를 보고 “정말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새 교장이 필요한데, 교장이 되어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이사장님이 제게 누군가를 추천해달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저는 당연히 “시간이 안 된다”라고 했죠. 그런데 제게 “1년에 3일만 나오면 된다. 매일 나와서 결재하는 교장은 많다. 그런 교장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제 행적을 다 알고 계신 것 같았어요. 솔직히 1년에 3일을 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오케이, 아윌 두잇!(네, 그럼 할게요)”이라고 답했죠.
정말로 1년에 3일만 나가는 건 아니죠?
그럼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은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학교를 위해 정말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내려고 해요. 명문으로 지난 60년 동안 좋은 점이 많았지만, 가려진 부분도 분명 있어요. 저는 그걸 잘 알고 있죠.
‘금난새 교장’은 무언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나요?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고, 교육자로서 새로운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접근 방식이요. 제가 50년 전 이 학교를 다닐 때는 ‘내가 교장이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하는 게 많았어요. 지금 교장이 되어보니,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학생이라면 무엇을 원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가 소위 목에 힘주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아이들이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학생들이 교사에게 고개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그러지 말고 서로 짧게 인사하는 방법을 서로 찾아보자고 제안했어요, 학생들에게. ‘안녕’이라는 의미가 담기면서,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말을 만들자고요.
재미있는 제안이네요. 그렇지만 워낙 유능한 학생들이 모인 예고인 만큼 또래 친구들끼리 경쟁도 피할 수 없겠죠?
네, 맞아요. 저는 그런 데서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가받으려고 하는 음악은 미래가 없어요. 골프가 유행이라고 해서 모두 골프선수가 되어야 할까요? 물론 어려움이 있겠지만 성공적인 본보기를 만들어야겠죠. 예고가 변함으로써 한국의 예술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창원대학교 석좌교수도 겸임하고 있네요.
창원은 GNP가 3만 달러가 넘지만, 기업이 많은 대신 문화가 부족해요. 창원대가 창원을 변화시키기 위해 저를 불렀어요. 멋있는 이야기죠? 창원대에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하고 있었는데, (좀 자랑 같지만) 창원대 총장이 “학장이 되어달라”고 요청해왔죠. 전혀 인연이 없던 분이었어요. 저는 예고 상황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죠. 그랬더니 그분이 똑같은 제안을 했어요. 실무는 따로 지정한 부학장에게 맡기고, 제게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달라고요. 그런데 정년에 걸리는 바람에 창원대 최초의 석좌교수가 됐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내고 있나요?
포항에서는 4년째, 창원에서는 지난해부터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시작했어요. 포스코가 포항공대를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졸업생이 노벨상을 탔으면 좋겠다’라는 거였대요. 그래서 투자를 많이 했는데 아직 한 명도 나오지 못했죠? 한번은 제가 총장에게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하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어요. 공대에 집중하느라 예술은 없었거든요. 이 취지가 좋다고 누군가가 16억 원을 기증하기도 했어요. 매해 공대 학생들 모아놓고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해요. 예술을 아는 공학도가 더 많이 생긴다면 노벨상 수상을 좀 더 빨리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 아이들이 CEO가 된다면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투자할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