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타셰프가 반한 그릇, 비결은 못생겨서"

  • 김윤덕 기자

입력 : 2013.12.05 03:03 | 수정 : 2013.12.05 10:14

['생활도예 외길 25년' 이윤신 대표]

내로라하는 수입 명품 그릇과 경쟁… 화려하지 않고 단순·투박해 인기
서울시립미술관 초청으로 전시도

"풍채 좋은 조선시대 한량이 챙 넓은 갓을 비껴 쓰고 옥색 도포 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휘적휘적 걷는 듯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의상 같아서 헐렁한 듯 자유분방한 멋을 풍긴다."

정양모 전(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극찬은 이윤신(55)의 '그릇'을 두고 한 말이다. 미슐랭 3스타 셰프로 세계 3대 요리사로 꼽히는 프랑스의 장 조지는 미국 PBS와의 한식 다큐 '김치 크로니클'을 촬영할 때 서울로 날아와 이윤신의 그릇을 공수해갔다. "한국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이랬다. 자칭 "일개 밥그릇 만드는 여자일 뿐"인데,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은 지난 한 달간 이윤신의 그릇을 초청 전시했다. 매일 관람객 200~300명이 다녀갔다. 강남 유명 백화점에서 로열 코펜하겐 등 해외 명품들과 매출 1·2위를 다투는 국산 도자기를 구경하러 주부들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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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 '이도' 본사에서 만난 이윤신씨가 자신이 만든 그릇들을 자랑하며 웃고 있다. 그녀의 그릇은 신세계 등 유명 백화점에서 로열 코펜하겐 등 수입 명품들과 매출을 다툰다. /김연정 객원 기자
서울 가회동 '이도' 본사에서 만난 이윤신은 배짱과 유머가 두둑한 여자였다. "장 조지는 한식에 잘 어울리는 그릇이라고 했지만 이탈리아식, 일식도 다 어울리죠. 볼 때마다 누가 만든 그릇일까 놀라고 감탄합니다. 하하!"

이윤신의 자신감은 25년간 '생활도예' 외길을 걸어온 뚝심에서 비롯됐다. "홍익대 도예과 동기들이 하나같이 오브제 만드는 작가의 길로 갈 때 저는 그냥 그릇, 음식 담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어요. 무슨 물건이든 감상용 말고 쓰임 있는 게 좋았거든요." 일일이 손으로 빚어 안양과 여주에 있는 가마에서 구워내지만, 자기가 만든 그릇을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라고 부르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척"이라며 웃었다.

"도자공예의 본질은 그릇이에요. 달항아리? 감상용이 아니라 음식을 저장했던 그릇이었다고요. 도자기를 '판다'는 행위를 생경하게 여길 때 난 그릇을 빚어 팔기 시작했죠. 제품을 만든 사람과 그걸 돈 주고 사간 사람의 소통이 바로바로 이뤄지고 거기서 브랜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게 신났어요. 아무리 훌륭한 예술이라도 생활 속 문화로 어우러져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윤신 그릇의 경쟁력은 '기교 없음'에 있다. 단순하고 투박하며 색이 없다. "그릇에 화려한 색깔을 칠하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윤신은 고개를 저었다. "초창기엔 1~2년 꽃무늬도 그려 넣어보며 별짓을 다 했지요. 마음에 안 들어 버린 그릇이 트럭 두 대가 넘어요. 문제는 음식이었어요. 그릇 본연의 기능은 음식을 담는 것인데, 그릇 자체가 화려하면 안 되는 거였지요. 그릇의 미감 50, 음식 50이 합쳐져 100이 되어야 했던 겁니다. 여백, 그건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이기도 했고요."

내로라하는 수입 명품 도자기들과 어깨를 겨루는 것도 이 단순함과 투박함에 있었다. "해외 명품은 그릇 자체가 예술이라 음식이 묻혀버려요. 그리고 저는 흰색 도자기가 너무 매끈하고 차가워서 싫어요. 따뜻하고 여유로워서, 무엇을 담아도 넉넉하게 받아주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죠."

홍익대 도예과 원경환 교수는 같은 과 선배이면서 남편이다. "그이는 주로 설치 작업, 대형 조형물을 하죠. 내가 그릇 100개 만들어서 100원 번다면, 우리 남편은 2년에 한 작품 만들어서 1만원 번다고 할까요?(웃음) 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아요."

이번 전시로 도예가로서의 '중간 마침표'를 찍었다는 이윤신은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그야말로 완벽한 제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