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男子의 베토벤 소나타… 20개월간의 대장정, 황홀 그 자체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입력 : 2013.11.24 23:44

피아니스트 김선욱 콘서트

피아니스트 김선욱.
"신과 하나가 돼 평화 속에서 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현악 사중주 15번의 '몰토 아다지오'가 흐르는 영화 '카핑 베토벤' 피날레 장면에서 악성(樂聖)이 던진 한마디가 떠올랐다. 지난해 3월 시작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시리즈(총 8회)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21일 밤 LG아트센터. 그동안 단 한 곡의 앙코르도 들려주지 않았던 김선욱은 '바가텔' 가운데 세 번째 '안단테'를 골랐다. 그리고 지시어 '칸타빌레'를 충실히 지키며 피아노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김선욱은 앞으로 '디아벨리 변주곡'과 '바가텔'로 소나타 이후의 베토벤을 연주하겠다고 했다. 그 예고편은 바로 직전 '아리에타'악장(소나타 32번 2악장)에서 보여주었던 극히 평화로운 '자유'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클래식 공연계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김선욱 독주회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피아노 하나로 국내에서 이런 진풍경을 연출한 경우는 예프게니 키신 외에는 거의 기억에 없다. 20개월 전 초기 소나타로 시작한 첫 무대는 베토벤의 인간미 넘치는 모성애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김선욱은 회를 더할수록 진화를 거듭했다. 올 초 서울시향과 함께한 '황제' 협주곡에서 분수령을 이루더니, 6월 20일 '열정' 소나타로 대표되는 여섯 번째 공연에서는 스스로 설정한 성벽을 벗어나 비상하는 앨버트로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소나타 30번 3악장의 '노래하듯이' 주제에서 들려준 극도로 조탁된 음색은 끝까지 올곧게 이어졌다. 31번 소나타 3악장의 '탄식의 노래'에서 김선욱은 탄식하며 동시에 천국을 바라보았다. 연결부, 커져가는 화음 연타는 압권이었다. 최후의 '아리에타'는 또 어떤가! 현기증을 유발하는 아찔한 트릴과 32분음표의 무한 진행이 빛났다.

이날 70분의 공연 시간은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였다. 악장은 물론 각 곡 사이의 간극은 사라지고 음악은 서사적으로 통합되었다. 제 돈 내고 온 수준 높은 청중은 단 한 번의 박수로 김선욱의 연출에 화답했다. 2년 만의 팬 사인회를 기다리는 줄은 3층 로비에서 4층까지 이어졌다. 약관의 나이에 베토벤을 자신만의 음악어법으로 일궈낸 김선욱. 그가 우리 연주자이기에 더욱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