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힐 춤이 있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3.11.21 03:04 | 수정 : 2013.11.21 11:02

['한국춤 大家' 김매자·배정혜·국수호]

'반백년 춤 인생' 세 명의 高手… 두 달간 서로의 춤 배우고 가르쳐
"남의 춤 세계 엿보는 재미 대단해"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20세기 최고 화가들이다. 일흔 살 먹은 피카소가 "이제부터 마티스처럼 원색의 야수파가 되어보겠다"고 한다면? 마티스가 "샤갈처럼 몽환적 화면을 그리겠다"고 나서고, 샤갈이 "나도 피카소처럼 그려보겠다"고 한다면?

상상에나 존재할 일이지만, 한국 춤 최고의 고수 3인에게는 즐겁게 도전할 만한 일이었다. 김매자(70) 창무예술원 원장, 배정혜(69) 전 국립무용단장, 국수호(65)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내달 2일 한 무대에 선다. 각자의 춤이 아니라 상대의 춤을 새롭게 배워서 추기로 했다. 셋의 춤은 매우 다르다. 김매자는 절제, 배정혜는 격조, 국수호는 역동성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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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디딤무용단 뜰에서 만난 한국무용가 배정혜, 국수호, 김매자(사진 왼쪽부터)씨가 ‘손만 들었는데도 느낌이 달라지는’ 고수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화가가 화풍을 바꾸기도 힘들지만, 팔 한번 들 때도 자신만의 선(線)이 있는 일흔 춤꾼이 다른 안무가의 춤을 새로 익힌다는 것은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의 춤이라도 자신의 식대로 추자면 일주일이면 뗀다. 하지만 세 고수는 남의 춤을 남의 식 그대로 추겠다고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 연습 중이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디딤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매자씨는 "우리가 50대 '젊은' 나이였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무대"라고 말했다. "쉰에는 자기 춤을 돌아볼 여유도 없어요. 예순은 넘어야 각자의 '춤집'이 몸에 들어서요. 일흔 되니 이제야 '그래, 내가 못 해본 저런 세계가 있구나' 보여요."

공연은 국내 첫 무용 전문 소극장인 창무 포스트극장 개관 20주년 공연 '내일을 여는 춤'의 개막작이다. 김매자는 국수호의 '입춤'과 배정혜의 '춘설'을, 국수호는 김매자의 '숨'을, 배정혜는 '산조'를 춘다. 채상묵, 김온경, 임현선 등 중견 안무가 23명이 20일간 이어지는 기념공연에 출연한다.

힐끗 보기만 해도 무보(舞譜)가 파악될 경지에 오른 이들이지만, "순서 외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무조건 외우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안무 의도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왜 이 지점에서 이렇게 손을 들어야 하는지 알고 들어야 하니 쉽지가 않죠."(배정혜) "그 사람의 작품 세계에 최대한 다가가서 추려고 하니 어려워요. 기본 호흡부터 다시 익혀야 하니까요."(국수호)

세 사람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면서도 연신 "정말 재미있다"고 말한다. 김매자씨가 "수십년 동료 무용수로만 알고 지내다 춤으로 서로의 마음속을 엿본 것 같다"고 하자, 옆에 있던 배정혜씨가 "남의 춤 세계를 엿보는 재미가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고 맞장구를 쳤다. 국수호씨도 거들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연 문의 (02)337-5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