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지휘자 "停年? 아내가 관두라고 할 때"

  • 런던=김기철 기자

입력 : 2013.11.18 23:26

[마에스트로 네빌 마리너]

영화 '아마데우스' 음악 맡아 모차르트 열풍 몰고온 주인공
내년 런던 90세 기념 연주회 "지휘, 한해 딱 40회면 좋겠어"

지휘자 네빌 마리너는 영화 '아마데우스'(1984년) 음악감독을 맡아 전 세계에 모차르트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에쿠우스'를 쓴 극작가 피터 셰퍼가 극본을 쓰고,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이 영화는 마리너가 지휘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오케스트라'(ASMF)를 만나 완성도 높은 흥행작으로 태어났다.

올해 구순(九旬)의 마에스트로는 하루 6시간 오케스트라 음반 녹음을 이끌고, "1년에 40회 정도만 지휘하면 딱 좋겠다"고 말하는 현역(現役)이다. 한 살 아래 지휘자 겸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가 있지만 최근 앞을 못 볼 만큼 건강이 안 좋고,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86), 베르나르트 하이팅크(84), 로린 마젤(83)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마리너는 내년 4월 1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리는 90세 기념 연주회에서도 ASMF를 지휘할 예정이다. 최근 런던 글로스터 로드 역 근처 자택에서 만난 마리너에게 지휘자로서의 장수 비결부터 물었다.

올해 구순의 마에스트로는 집 화장실 안에 크로아티아어·스페인어 사전을 비치해뒀다. “순회 연주를 갈 때 그 나라 말로 몇 마디라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올해 구순의 마에스트로는 집 화장실 안에 크로아티아어·스페인어 사전을 비치해뒀다. “순회 연주를 갈 때 그 나라 말로 몇 마디라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ASMF 제공
"원래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악기 연주자는 '늘 좀 더 잘 연주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스트레스를 느낀다. 지휘자도 물론 부담은 있지만, 연주자만큼은 아니다. 데본(영국 남서부)에 있는 시골집에 내려가면 테니스도 친다.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 바쁜 수준이지만."

ASMF를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때만 해도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기계적으로 많이 했다. 교향곡을 녹음하면서도 하루 종일 이 교향곡, 저 교향곡의 1악장만 연주하고, 다음 날 2악장만 연주하는 식이었다. 좀 더 수준 높은, 최상의 앙상블을 만들고 싶었다. 1958년 우리 집 거실에서 열서너 명이 모여 앙상블을 만들었고, 다음 해 연주회를 가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음반사 대표가 녹음을 제의했고, 그 음반이 히트했다."

―'아마데우스' 음반이 정말 많이 팔렸다.

"대중이 모차르트를 즐기게 된 계기가 됐다.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모차르트를 녹음했다. 사람들이 모차르트만 들으려고 해 문제가 될 정도였다. 우린 운이 좋았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LP에서 테이프, CD로 옮겨가는 레코드 음악 전성기에 활동했으니까."

ASMF는 1996년에도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음악을 연주,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마리너는 50년 넘게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500장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에게 예술감독직을 넘겨주고, 종신 회장으로 있다.

―언제까지 지휘를 계속할 것인가.

"아내 몰리(Molly)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아내는 내 음악의 애호가이자 가장 강력한 비판자다. 불만스러울 때는 직격탄을 날린다."

마리너와 인터뷰를 마치고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변기 옆엔 스페인어(語)와 크로아티아어 사전이 놓여 있었다. 구순의 마에스트로는 "순회 연주를 하러 갈 때, 그 나라 말을 몇 개라도 익혀서 간다"고 했다. ASMF는 내년 11월 수석 객원지휘자 머레이 페라이어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