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명의 관객을 하나로… 73세 피아니스트의 위엄

  • 한현우 기자

입력 : 2013.11.10 23:53

허비 행콕 내한무대

밤 9시 20분, 다른 멤버들이 무대 뒤로 들어가고 허비 행콕 혼자 피아노 앞에 남았다. 그는 무심한 듯 건반을 누르며 즉석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피아노는 비틀거리다가 전진하고 사그라지다가 타올랐다. 흡사 줄꾼이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줄 타듯 했다. 이어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합류하더니 익숙한 테마를 뿜어냈다. 행콕의 명곡 '캔털루프 아일랜드(Cantaloupe Island)'였다. 1200석을 메운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네 명의 잼(jam)이 끝나니 밤 10시 12분이었다. 52분간의 한 곡 즉흥연주! 솔잎 하나를 그리며 시작한 곡의 끝은 12폭짜리 금강전도(金剛全圖)였다. 행콕은 올해 73세. 대가(大家)는 전혀 늙지 않았다.

지난 8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허비 행콕의 내한무대는 경이(驚異)와 찬탄(讚歎)이 교차하는 음악적 체험이었다. 행콕은 물론, 비니 콜레이유타(드럼), 리오넬 루에케(기타), 제임스 지너스(베이스)의 연주는 등골에 땀이 흐를 만큼 오싹했다.

이미 몇 차례 내한공연을 했던 허비 행콕은 이번 무대에서 가장 파워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이미 몇 차례 내한공연을 했던 허비 행콕은 이번 무대에서 가장 파워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9ent 제공
'액추얼 프루프(Actual Proof)'로 무대를 열 때부터 관객들은 록 콘서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먼저 등장한 콜레이유타가 '문어발 드럼'의 맛만 보여줬을 뿐인데, 객석 사방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행콕은 "정말 대단한 관객들이네요. 한국 공연은 항상 대단해요"라고 화답했다. 네 명의 연주는 각각 다른 네 곳에서 연사(連射)돼 한 과녁을 꿰뚫는 화살 같았다.

행콕은 그랜드 피아노와 키보드, 기타처럼 생긴 키보드인 '키타(keytar)'를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키타를 메고 '워터멜론 맨(Watermelon Man)'을 연주하며 베이스, 기타 연주자와 각각 인터플레이할 때는 세 명의 수박장수가 손님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듯했다. 뒤에 앉은 콜레이유타는 누가 이기든 싼값에 수박을 사갈 손님같이 연주했다.

이날의 발견은 아프리카 베냉 출신의 40세 기타리스트 루에케였다. 행콕과 인터플레이에서 '누가 더 작게 소리 내나'를 경연할 때, 루에케의 일렉기타는 청력검사 때 듣는 가냘픈 소리를 냈다. '컴 러닝 투 미(Come Running To Me)'에서 그는 홀로 무대에 남아 온갖 스캣을 들려줬는데, 한숨과 킁킁대는 소리까지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과연 '인간 신시사이저'라는 평을 들을 만했다.

앙코르에서 행콕은 키타를 메고 로봇처럼 걸어나오며 '로킷(Rockit)'을 연주했다. 이 곡이 '카멜레온(Chameleon)'으로 바뀌며 공연은 2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충무아트홀 옆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도 '로킷'의 테마가 흐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