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 열정 하나로 일궈온 畵業, 뚜벅뚜벅 계속 걸어갈 것"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3.11.08 03:01 | 수정 : 2013.11.08 09:36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안창홍씨

"저는 미술의 힘이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는 절대적 힘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치고 피폐한 영혼을 일깨우고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출구로 인도하는 역할쯤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걸어가 볼 생각입니다."

제2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서양화가 안창홍(60)씨에 대한 시상식이 7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렸다. 안씨는 수상 소감에서 "돌이켜 보면 오기와 열정으로 달려온 세월이다. 만연한 물신주의와 이기심이 사회정의와 진실의 우위에 있는 이 사회에서 명예와 자존을 지켜내는 삶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정권과 체제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사소한 작가를 사랑한다는 어느 선각자의 말씀을 위안 삼아 지금껏 걸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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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제25회 이중섭미술상시상식에서 역대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황용엽(1회), 김차섭(14회), 안창홍씨 부부, 강경구(12회), 오숙환(24회)씨. /오종찬 기자
'화단의 이단아' 안창홍씨는 대학 졸업장 없이 독학(獨學)으로 그림을 익힌 '거리의 화가'. 고교 시절부터 여름엔 막노동을, 겨울엔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 팔며 밥벌이를 했다. '중앙 화단'에 이름을 알린 건 1979년. 도쿄의 화랑에서 열리는 한국 작가 그룹전 출품작을 고민하다 친구 아버지가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직전 찍은 부부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을 유화로 옮기고 눈과 입 자리에 시커먼 구멍을 그려 '혼(魂)이 없는 인물', 나라 잃은 백성을 표현했다. 분단, 독재 등으로 소재를 넓혀가며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그렸다.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던 1980년대엔 '민중 미술가'로 불렸고, 이후 일러스트, 이웃 사람들 누드 연작 등으로 끝없이 세계를 넓혀 갔다. 축사를 맡은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은 "명문대 미대 출신, 혹은 국전(國展) 같은 대형 공모전 출신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었던 1970~1980년대, 안창홍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만 마치고 전업 작가로서 많은 고생을 통해 이 자리에 섰다. 그래서 이 상이 주는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살면서, 그리운 가족을 끊임없이 화폭에 그렸던 이중섭(李仲燮·1916~1956)과 세상의 편견을 화가로서의 '명예와 자존'으로 이겨낸 안창홍은 삶의 궁핍을 예술혼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이날 시상식에는 송미숙·오원배 이중섭미술상 운영 위원, 심사 위원인 최인수·강경구(1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김홍주씨, 역대 이중섭미술상 수상 작가인 황용엽·김차섭·정경연·오숙환씨도 참석했다. 또 이중섭 조카 손녀 이지연·지향씨, 유희영 전(前) 이중섭미술상 운영 위원, 이기웅 열화당 대표,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문순 조선일보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변용식 조선일보 발행인을 비롯해 각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했다. 안창홍 수상 기념 전시는 17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 (02)724-6322, 6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