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2인 20역으로 2시간… 이렇게 흐뭇할 수가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3.09.04 23:02

구텐버그

재기 발랄하고 유쾌한 2인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뮤지컬‘구텐버그’의 정상훈(왼쪽)과 장현덕.
재기 발랄하고 유쾌한 2인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뮤지컬‘구텐버그’의 정상훈(왼쪽)과 장현덕. /쇼노트 제공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누구나 찾게 되는 '모나리자'. 그녀는 멀찌감치 방탄유리 뒤에 있다. 게다가 곁눈질로라도 한번 보려는 수백명이 인(人)의 장막을 이뤄 관람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오는 대작에서 발길을 돌려 조용한 방에 들어서면 발견의 기쁨이 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자화상이 대표적이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자신을 목탄만으로 묘사한 그림은, 명화의 아우라나 화려한 색채가 주지 못하는 뜻밖의 감동을 안긴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다빈치, 벨라스케스, 다비드의 휘황한 걸작 사이에서 우연히 만나는 쿠르베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맘마미아!'에는 없는 재치와 재미에 두 시간이 마냥 흐뭇하다. 작품은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버그가 와인 양조자였다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브로드웨이 진출이 소원인 두 남자의 뮤지컬 제작 과정을 극중극으로 보여주는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이다. 특별한 무대 세트는 없다. 아예 "우리 공연엔 레미제라블의 회전무대, 미스 사이공의 헬리콥터는 없다"고 얘기한다. 반주는 피아노 1대. 배우 2명이 20개 역을 소화하는데, 옷을 바꿔입지도 않는다. 야구모자 하나 바꿔쓰면 다른 사람이다.

최소한의 소품과 기본만을 갖춘 '구텐버그'가 관객에게 일깨우는 것은 '꿈'이다. 스타벅스와 양로원에서 일하는 주인공들이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 습작생이 노벨상을, 영화광이 할리우드를 꿈꾸듯, 그저 꿈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잠시라도 그때로 돌아가는 기쁨, 그것이 '구텐버그'가 주는 선물이다.

▷11월 10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