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純情의 연극, 여기 있소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3.09.02 03:02 | 수정 : 2013.09.02 04:39

행위예술가 巫世衆·시인 김경주의 만남, 서울시극단 '나비잠'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37)는 올해 초 이민을 가려고 했다. "이런 나라에서는 더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말하는 '이런 나라'는 '순정(純情)의 연극'이 발붙이기 어려운 나라다. 그가 극본을 쓴 부조리극 '블랙박스'는 작년 말 대학로에서 올라가 한 달 관객 200명을 모았다. 하루에 10명을 앉혀놓고 공연한 셈이다. 김경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혹하게 망했다." 짐을 꾸리려던 그를 눌러 앉힌(?) 이가 서울시극단 김혜련(64) 단장이다. 연극 본연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살리고 싶던 김 단장은 "그렇게 하고 싶은 순정의 연극, 같이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예술인의 합심(合心)으로 탄생한 연극이 오는 19일 개막하는 '나비잠'이다. 몽환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김씨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시극(詩劇)이기도 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요?"(악공) "한 사람으로 글썽거리고 있잖아."(스님) "좋은 음악은 자신과 가장 닮은 울음소리를 찾아가서 그걸 달래는 것이라네. 자네의 고향처럼."(스님) 등 시적인 대사로 흘러간다.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의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전위예술가 무세중(오른쪽)씨와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씨. 연극‘나비잠’에서 광대로 출연하는 무씨가 민중을 상징하는 인형을 안고 파안대소하고 있다.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의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전위예술가 무세중(오른쪽)씨와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씨. 연극‘나비잠’에서 광대로 출연하는 무씨가 민중을 상징하는 인형을 안고 파안대소하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김씨가 극본을 쓸 때 특히 신경 쓴 캐릭터가 광대다. 처음부터 '특정인' 캐스팅을 염두에 뒀다. 전위예술가 무세중(76)씨다. 우리나라 1세대 전위예술가인 무씨는 민속 탈춤 춤사위 500가지를 온몸으로 익히고 구현해왔다. 김 단장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하게 된 무씨는 "민중의 아픔을 전달하고 시대를 관조하는 통찰자인 광대를 살리기 위해 경기 지역의 깨끼춤을 춰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연습해보니 작품이 다분히 희랍 비극적이면서도 한국의 미감이 잘 살아있다"며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희곡 작가가 드물었는데 이 연극이 극작가의 힘을 보여주는 반가운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비잠'은 서울 축성(築城) 당시를 배경으로, 민중의 혼(魂)과 모성의 시원(始原)을 되짚어본다. 아름다운 우리말 대사를 타고 인형·그림자·영상이 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대중이 편하게 즐기는 줄거리 위주의 전개가 아니다 보니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다. 머리보다 마음을 열고 봤을 때 깊숙이 다가올 작품이다. 김경주씨는 "이 세계에 숨겨진 배후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 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나비잠' 19~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1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