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 가야 할 까닭, 하나 더

  • 합천=곽아람 기자

입력 : 2013.09.26 23:43

[천년 古刹과 현대 美術의 만남… 해인아트프로젝트 오늘부터]

폐지로 만든 불상 '매점불' 등 미술로 구현하는 '마음' 주제로 국내외 30팀 작품 70여점 설치
절 찾는 신도 줄어드는 현실에 볼거리로 대중성 갖자는 뜻도

금동(金銅)도, 화강암도 아니다. 누런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폐지(廢紙) 덩어리. 그러나 분명히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 형상이다. 경배할 것인가, 경시할 것인가? 이것은 '부처'인가, 아닌가. 미술가 그룹 '김월식과 무늬만 커뮤니티'는 폐지 수집하는 노인 108명으로부터 구입한 박스로 해인사 육각정에 종이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폐지로 만든 불상을 안치했다. 불상 속에 노인들의 소원이 적힌 종이를 넣어 복장유물(腹藏遺物)까지 갖췄다. 작품 이름은 '매점불(每點佛)'. 육각정이 매점(賣店)으로 쓰였다는 데 착안해 이름 붙이고, 모든(每) 점(點), 즉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두루 존재하는 부처라 해석했다.

'해인아트프로젝트 2013'이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합천 해인사에서 열린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의 일환으로 해인사 경내, 가야산 산책로 소리길, 성보박물관에 국내외 현대미술작가 30팀 작품 70여점을 설치했다. 2011년에 이어 2회째인 이번 전시의 주제는 '마음'. 전시를 총괄한 향록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바로 '心'이다. 실체가 없는 '마음'을 현대미술을 통해 구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큰 사진은 해인사 일주문 곁에 설치된 최평곤의‘내가 아닌 나’. 작은 사진은 김월식과 무늬만 커뮤니티의‘매점불’(위), 합천 치인리 마애불입상의 부분(아래).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해인사 곳곳에 미술 작품으로 구현됐다. 큰 사진은 해인사 일주문 곁에 설치된 최평곤의‘내가 아닌 나’. 작은 사진은 김월식과 무늬만 커뮤니티의‘매점불’(위), 합천 치인리 마애불입상의 부분(아래). /합천=곽아람 기자·대장경축전조직위 제공
성(聖)과 속(俗)의 경계인 일주문 곁엔 최평곤(55)의 높이 6.5m짜리 조형물 '내가 아닌 나'가 섰다. 고개 숙인 사람 형태의 이 조형물은 대나무로 만들었다.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 틈을 들여다보면 시커먼 조형물이 또 하나 들어있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사이에서 '참 나'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인도 작가 쉴파 굽타(37)는 소리길 바닥에 100개의 돌판을 박아 넣었다. '믿을 때면 눈앞에 나타나는 영혼의 존재', '나의 내면을 듣는다' 등 법화경을 해석한 구절들을 새겨넣어 산책자들은 걸으면서 명상을 할 수 있다. 성보박물관엔 화엄경 구절을 적은 12m짜리 비단 천 210장을 천장에 매달아 사이를 거닐며 미륵불 이미지를 그리게 한 임옥상(63)의 '허허미륵(虛虛彌勒)'이 놓였다.

전시가 끝나도 작품 대부분은 해인사가 구입해 남겨두기로 했다.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다. 스님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일부 재가불자(在家佛子)들에게만 공개되던 높이 7.5m짜리 합천 치인리 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도 전시 기간 동안 일반에 개방된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함으로 이름난 불상이지만, 불상을 만나기 위해 왕복 2시간 동안 바위투성이 산길을 오르내릴 수 있을 만큼의 신심(信心)은 필수다. (055) 934-3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