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옮겼다, 일본으로 통째

  • 도쿄〓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9.15 23:16

[도쿄 무대에 오른 오페라 '리골레토']

'오리지널 무대'에 대한 선호도 높아… 유명 극장들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

장애를 지닌 왕실 어릿광대役 가닛제… 딸 잃은 아버지의 슬픔 담담히 연기
3600석 공연장 거의 빈자리 없이 꽉

일본은 전 세계에서 서구 유명 오페라를 프로덕션 통째로 들여오는 유일한 나라다. '오리지널 무대'에 대한 선호가 유별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볼로냐·피렌체·나폴리의 유명 극장들이 시즌이 끝나면 일본을 겨냥해 이삿짐을 쌀 정도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이 극장도 지금, 도쿄로 터전이 옮아온 듯 엄청난 공연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부터 도쿄 우에노의 도쿄문화회관에서 베르디 최후 오페라 '팔스타프'(5회),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5회)을 올리고, 시부야의 NHK홀에서 '리골레토'(4회)와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아이다', 베르디 갈라 콘서트를 열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은 물론 지난 시즌 레퍼토리를 이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다니엘 하딩, 명(名)바리톤 레오 누치와 조지 가닛제, 소프라노 엘레나 모수크 등 주역들까지 포함한 대군단이 참여했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페라‘리골레토’에서 각각 주인공 리골레토와 질다 역으로 나선 조지 가닛제(오른쪽)와 엘레나 모수크. 13일 밤 도쿄 NHK홀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했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페라‘리골레토’에서 각각 주인공 리골레토와 질다 역으로 나선 조지 가닛제(오른쪽)와 엘레나 모수크. 13일 밤 도쿄 NHK홀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했다.
지난 13일 밤 도쿄 중심 시부야의 NHK홀. NHK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주홀인 이곳에서 작년 11월 라 스칼라에서 공연한 오페라 '리골레토'가 고스란히 재현됐다. 구스타보 두다멜과 오케스트라, 조지 가닛제(리골레토), 엘레나 모수크(질다) 프란체스코 데무로(만토바 공작) 등 당시 주역들이 그대로 등장했다. 황금빛 번쩍이는 만토바 공작 궁전도 밀라노 무대 그대로였다.

오페라 티켓 최고가는 6만2000엔(약 68만원). 3층 꼭대기 좌석도 2만9000엔(약 32만원)이나 했다. 기자가 앉은 좌석은 1층 오른쪽 파이프오르간 아래로 무대 오른쪽이 약간 보이지 않는 시야장애석이지만 4만8000엔(약 53만엔)이나 했다. 그래도 3600석짜리 공연장엔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조지아 출신 바리톤 조지 가닛제(43)는 척추장애인에 다리를 저는 장애로 비틀린 성격을 갖게 된 왕실 어릿광대를 당당한 목소리에 담았다. 잔잔하던 객석은 1막 후반 질다 역의 엘레나 모수크가 만토바 공작과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술렁였다.

'리골레토'의 비극은 딸을 농락한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로부터, 공작이 아닌 딸의 시신이 담긴 부대를 넘겨받으면서 절정에 이른다. 가닛제는 딸의 죽음 앞에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비탄을 고함치지 않고 과장없이 해냈다. 지난 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7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오페라 페스티벌에서도 리골레토를 불렀고, 오는 10월과 12월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를 부를 만큼 잘나가는 바리톤이다.

LA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인 두다멜이 지휘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는 오페라를 위해 존재하는 오케스트라답게 드라마에 착착 감기는 연주로 '리골레토'의 비극성을 더 짙게 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