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F'는 목재 이름이 아닙니다, 축제입니다

  • 남양주=정지섭 기자

입력 : 2013.09.05 23:51

마석가구단지 이주노동자가 기획하는 '제2회 마석동네페스티벌'
올해는 불에 탄 건물이 무대 작년 '옥상'보단 좋은 곳이죠
보컬이 여기서 사고당해 이주민 밴드, 이번엔 없어요

불길에 휩싸였던 외벽은 검게 그을렸고, 창틀과 유리창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풍경은 지난겨울 화재로 타다 남은 경기 남양주 마석 가구단지 내 3층 공장 건물이다.

7일 오후 7시, 이곳은 작은 음악 축제의 무대가 된다. 이주 노동자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손을 맞잡고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는 마석동네페스티벌이다. 줄여서 MDF, 목재 재료명과 같다. 목재 먼지 속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작년 10월 다른 공장 옥상에서 한국 인디밴드의 펑크 사운드에 맞춰 동남아 무슬림, 서남아 힌두교도들과 한국 공장 사장님 등 400여 관객이 자정이 넘도록 춤추고 함성 지르는 풍경을 연출했던 이 젊은 축제가 올해엔 좀 더 넓은 곳으로 무대를 옮겼다.

여기가무대다.‘ 마석동네페스티벌’의 기획자 조지은·양철모·알룸(왼쪽부터)이 들고 있는 것은 서울 사직동 재개발구역에서 가져 온 이른바‘유기(遺棄) 화분’. 화분도 관객처럼 공연장에 놓고, 공연 후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져가도록 할 예정이다. /정지섭 기자
5일 공연장에서 만난 MDF 기획자는 미술 그룹 '믹스라이스(양철모·조지은)'와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알룸(마석이주극장 대표)이다. 이들은 "올해는 행사를 9월로 앞당겨 작년처럼 쌀쌀한 가을바람에 떨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마석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믹스라이스는 '마석이주극장'을 이끌던 알룸과 만나 가까워졌다. 2008년 셋이 모인 자리에서 알룸이 "마석 공장에서 페스티벌 한번 열어보고 싶다"고 운을 뗀 것이 시작이었다.

"귀가 번쩍 뜨였던 게, 그땐 우리도 좀 매너리즘에 빠져있었거든요. 이주민들이 주체가 돼서 '우리가 이렇게 행사를 멋지게 만드니 한국인들도 와서 함께 즐기라', 얼마나 멋진 역발상이에요?"(양철모) "그런 역발상이 신선했는지,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흔쾌히 도와줬고, 뮤지션들도 말도 안 되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흔쾌히 섭외에 응해줬죠."(조지은) "작년 첫 공연이 끝난 뒤 뭘 어떻게 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참가했던 인디밴드와 관객, 심지어 식당 주인과 공장 사장님들도 '올핸 언제 할 거야' 하고 묻더라고요. 하하."(알룸)

'마석의 열대 과육 향연에 초대하고 싶소'라는 타이틀이 붙은 2회 MDF에는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 파블로프, 야마가타트윅스터, 요한일렉트릭바흐, 오브라더스, 위댄스, 김세영X류지완이 나와 초가을 마석의 밤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방글라데시 볶음밥인 기추리 같은 음식으로 채워지는 저녁상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지난해와는 달리 이주민 밴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작년 오프닝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필리핀인 조엘이 공장 화재로 다쳐서 몸이 성치 않은 탓이다. 그 공장이 바로 이번 페스티벌 무대가 된 건물이다. 대신 이주 노동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신청곡을 미리 받아 한국 밴드들이 연주하는 특별 코너를 마련할 예정이란다. 단 "핑클, 본조비, 봄여름가을겨울, 들국화까지 레퍼토리가 중구난방이라 100%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알룸은 귀띔했다.

세 사람은 삼삼오오 공연장으로 몰려와 공장 옥상을 가득 채우고 공단의 밤을 밝혔던 방글라데시·네팔·한국인 등 다국적 관객들의 함성이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별다른 사정이 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MDF를 치를 계획이다. 이들은 "작은 출발이지만 이 행사를 '전설'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금 젊은 관객들이 50년 정도 뒤에 할아버지·할머니가 돼서 손주들과 공연장을 찾는 장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아요?"(양철모) 관람료는 무료. 공연 당일 전철 평내호평역에서 행사장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