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朴貞嬉(박정희) 화백, 父親 이어 시각장애인 사랑 100년째

  • 김충령 기자

입력 : 2013.09.04 00:35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 아버지 송암 박두성 선생, "맹인들 일자리 만들라" 유언
"그 뜻 이어 저서·전시 수익금 시각장애인 이웃과 나누죠… 오늘도 내가 붓을 드는 이유"

송암 박두성 선생 그림
송암 박두성 선생
"이 작품들은 그림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그림입니다."

국내 최고령 수채화 화가 박정희(朴貞嬉·90) 화백은 지금도 '현역'이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박 화백은 작업실인 인천 화평동 '평안 수채화의 집' 한쪽에 침대를 두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도 붓을 들었다. 지난 5월, 강화도 길상면 '그린 홀리데이'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30여년 가까이 수채화가로 활동한 박 화백은 전시회 수익금을 시각장애인 장학금, 개안수술비, 점자도서관 건립 비용 등에 지원하기도 했다.

박 화백의 시각장애인 사랑은 2대째다. 박 화백의 부친은 한글 점자(點字)를 만든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1888~1963) 선생이다. 1913년 개교한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맹학교)의 초대 교사였던 박두성 선생은 평생을 앞 못 보는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1926년엔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받는다. 100년째 대를 이어 시각장애인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박 화백은 "아버지는 늘 시각장애인들이 어둠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고 회고했다. 박두성 선생이 제생원 교사로 부임할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들은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들어온 근대적 맹인 교육은 안마 교육뿐이었다. 안마 문화가 없던 조선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점자를 통해 교육을 받는 것이 시각장애인들이 열악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일본어 점자는 익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일본어를 배우고 이를 다시 점자로 인식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1920년 박두성 선생은 본격적으로 한글 점자 연구에 몰두했다. 제자인 이종덕·전태환 등과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6년 만에 결실을 본다. 시각장애인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판을 가르치기도 했다. 성경전서를 비롯하여 이광수 전집, 명심보감, 천자문, 이솝우화 등의 점자책을 남겼다. 박 화백은 "아버진 돌아가실 때도 '맹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들의 처지보다 이들을 학대하고 푸대접하는 이들의 인식 수준을 더 안타까워하셨죠."

작업실인 인천 평안 수채화의 집에서 박정희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업실인 인천 평안 수채화의 집에서 박정희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덕훈 기자
박 화백도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40년부터 인천에서 교편을 잡았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5남매를 키워온 과정을 담은 일기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2001)는 당시 생활사와 교육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손으로 직접 쓰고 삽화를 그려 넣은 원본은 국가기록원에 기증될 계획이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예순이 넘은 1985년에야 어릴 적 꿈인 화가에 도전했다. 전시 수익금은 시각장애인 등 이웃과 나눴다. 그 공로로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박 화백은 이 육아일기도 이웃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대로 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버지는 저에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죠. 저 또한 자녀들에게 그러했습니다. 앞으로도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