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입력 : 2013.09.12 11:29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주름살을 막을 도리는 없지만, 이 배우의 열정만큼은 여전히 뜨겁다. ‘야동순재’에 이은 ‘직진순재’는 오늘도 직진한다. 그것이 무대 위든, 카메라 앞이든, 유럽의 어딘가에서든 말이다.

배우 이순재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가 케이블 방송 최초로 시청률 4%대를 돌파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화려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노배우 넷. 근데 이 할배들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다. 유럽편에 이은 대만편 시즌2가 방영을 앞둔 요즘, 할배들의 맏형 이순재를 만났다. 국가대표 축구경기 한국·페루전이 열린 이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순재는 영락없는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인생의 푸른 봄철이 20대의 소유물일 거란 착각, 이제는 버려도 될 것 같다.



25년 만의 연출


“서울대학교 연극동아리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54학번 이순재입니다.” 여든을 코앞에 둔 이순재가 이제 갓 스물이 된 모교 새내기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신입생 13학번과는 무려 59년 차이다. 오는 9월, 이순재는 파릇파릇한 후배들을 데리고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시련>을 무대 위에 올린다. 25년 만의 연출이지만 그보다 재학생 및 졸업생들과 합을 맞췄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둔다. 신구 세대의 결합, 그리고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린 결과물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표다.



조촐한 제작발표회네요.
(이날 관악구청에서는 이순재가 연출을 맡은 연극 <시련>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언론에 평가받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니까. 또 우리가 아직 언론의 정상적인 평가를 받기엔 부족하거든. 아마추어들이 많아. 흥행이 목적이 아니라 아서 밀러라는 작가의 문학적 의미, 취지를 충분히 살리자는 뜻이에요.


출연 배우들 간의 학번 차가 많이 나던데요?
(학번상) 젤 위는 난데, 배우들은 64학번부터 10학번까지야. 사회에 나와서 전문배우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연출가,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해요. 이 사람들이 대학 시절의 향수를 찾아서 그때 기분으로 한번 해보자고 하는 거야. 어떤 면에서는 연기를 다시 새로 시작한다 생각하면 돼.


25년 만의 연극 연출이에요.
대상은 다르지만 쭉 연출을 해오긴 했어요. 1998년에 본의 아니게 세종대학교 겸임교수로 들어가 애들을 가르치게 됐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 한 가지 있더라고. 워크숍을 하는 거야. 작품 하나를 아이들이 매일 밤 연습하고, 나도 비는 시간엔 틈틈이 나가 연출하고. 그걸 토대로 기말엔 공연을 올려 학점을 매기는 거지. 그걸 10년 정도 했어.


대학로 무대에 올리지만 않았지, 꾸준히 연출을 해온 거네요.
본격적인 극단 작업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함께 가장 진솔하게, 철저히 작품 중심으로 한 거지. 이것(<시련>)도 두 차례나 했어요. (아이들이) 곧잘 했지. 대학에선 캐스팅할 때 제비뽑기만 해요. 수업이니까 편차를 줄 수 없단 말이야. 동일한 조건에서 제비뽑기를 하면 제일 못하는 아이가 제일 중요한 역을 맡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1년 공부해보면 본인이 본인을 알게 돼. 이게 내 적성에 맞는 일인가, 가능한 길인가 스스로 판단하게 되고 또 다른 진로를 자문할 기회를 갖지.


학생들 가르치면서 가장 주안점으로 삼는 부분이 뭔가요?
늘 하는 얘기지만 우선 연기의 기본이라는 것은 언어, 즉 화술이야. 근데 그 ‘말’이라는 게 쉽지 않은 조건이지.


시나리오가 있어도 별개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럼. 우리 때는 화술 훈련이 연습의 반이었어. 요즘 젊은 세대가 하는 언어가 아니란 말이야. 국어사전에 표기된 표준어, 그게 언어의 전형이라고. 시대와 장소를 떠나서 그것들을 구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언어를 해야 한다는 얘기야. 왜? 한국 배우가 하는 한국어는 10년 전 사람이든 30년 전 사람이든 경상도 사람이든 전라도 사람이든 다 알아들어야 할 것 아니야. 그건 기본이라고. 요즘 젊은 친구들이 쓰는 언어는 전혀 소통이 안 되는 용어들, 인터넷 용어들을 쓰고 있단 말이야. 그건 연극에서는 전혀 쓸 수 없는 용어야.


전에 한 인터뷰에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가 끌고 가는 자리라는 말인데, 이번에 연출을 맡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뭔가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체호프의 작품을 토대로 한 연극이 많이 나와. 체호프는 19세기에서 20세기 걸쳐 넘어오는 세계적인 문호라고. 그런 작가를 요즘 동숭동에서 젊은 친구들이 두들겨 부숴놨어. 그런 작품 만들라고 그 사람이 희곡 쓴 거 아니란 말이야. 이때 이 작품이 왜 나왔으며, 시대적 배경은 무엇이며, 뭘 주장하는지, 이 사람이 미래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이걸 찾아야 할 거 아니야. 근데 그런 이해도 전혀 없이 몸에 익지도 않은 어색한 코미디를 하려 든단 말이야. 체호프를 망신 줘도 보통 망신 준 게 아니야. 그게 내가 가진 불만이에요. 연출은 되도록 뒤에 숨고 배우들이 앞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근데 요즘 보면 배우는 안 보이고 맨 서커스단, 애크러배틱하는 사람들만 무대에 보여. 배우는 없어지고 (복합적 메시지나 현란한 무대) 연출만 돋보이는 거야. 물론 중요한 작업이지, 필요한 작업이야. 근데 원작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공존해야 하거든.

배우 이순재

로렌스 올리비에를 동경한 대학생

서울대 철학과 시절, 이순재는 우연한 계기로 연극에 발을 들였다. 1학년 때 모교 선배인 신영균의 공연을 처음 보았고, 2년 뒤 연극부에 몸을 담았다. 특히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일부 유럽영화는 그의 연기 욕망을 자극했다. 일본의 <기네마준보>, <스크린>을 뒤져보며 영화에 탐닉한 그때, 그는 ‘저런 게 연기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라고 맘먹었다.



서울대에서도 유명한 영화 마니아였다고요.
우리 때는 대학생이 즐길 만한 취미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먹고사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특히 3~4월 춘궁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 농촌, 벽촌에선 풀 뜯어먹고 죽 쑤어먹으면서 개도 안 먹는 음식을 먹었다고. 그러니 몇 푼 생기면 겨우 영화를 봤지. 그땐 지금과 달라서 좋은 영화들이 많았어. 이탈리아의 소위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 예를 들면 비토리아 데 시카 같은 대가들의 명작들이 나왔단 말이야. 문외한이었지만 우리의 감수성으로 봐도 탁월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좋은 작품은 누구든 알 수 있죠.
그렇지. 고전은 그 자체로 사상이야. 철저하게 예술적 충동과 창조정신으로 만든 거지, 돈 벌려고 만든 작품들이 아니라고.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야. 배우라는 단순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위 말해 사상가고 문화 지도자지. 로렌스 올리비에, 존 길구드 같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처럼 말이야. 그런 배우들의 작품을 보면 경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고.


영화관에도 자주 가야겠어요.
그럼. 그리고 우리 때는 좌석제니까 한 번 보고 맘에 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앉아서 봤어. 요즘은 극장 수가 많아져서 백만 관객이 가능해졌지만 옛날엔 백만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 <미워도 다시 한번> 정도가 백만을 했는지는 몰라도, 보통 20만~30만이면 대박이야~(무릎 치며). 


특별히 빠져들었던 작품이나 배우가 있나요?
그땐 우리나라에 잡지가 없었어. 그러니 일본 잡지를 봤지. <기네마 준보>나 <스크린> 같은 것들 말이야. (로렌스) 올리비에, 아 대단한 사람이야. 우리가 영화 보는 기준은 제일 먼저 감독이야. 아무개 하면 장르에 상관없이 배우 이름도 안 보고 들어간다고. 그럼 틀림없어. 그다음이 명배우.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게 또 하나의 볼거리야. 뭘 하는지 마는지도 모를 배우하고 명배우는 전혀 달라. 같은 배역이라도 소화하는 중량과 깊이가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명배우라는 거야. 명배우는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야. 철저한 트레이닝, 훈련과 자기계발을 해서 이루어지는 대배우지.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잭 니콜슨 같은 성격파 배우들이 그런 명배우들이라고. 우리 땐 그게 우선했던 시절이야. ‘이게 예술이구나’, ‘저런 게 연기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냐’는 충동이 일었지.


연극부는 언제 들어간 건가요?
대학교에 입학하니까 1학년 때는 신영균 선배가 중심이 돼서 연극을 하더라고.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에서 말이야. 해마다 하려니 했는데 2학년 되니까 안 하더라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3학년 올라가니까 후배 중 한 명이 연기에 관심이 있느냐며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거야. 그 후배가 연극계의 거성이고 대기획자 겸 극작가인 김의경 씨야. 그렇게 몇 명이 중심이 돼서 서울대학교 연극부를 재건했어요.


그래도 서울대 나와서 배우를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연기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 졸업할 즈음엔 진로를 바꿔야겠다, 생각도 하고 있었지. 근데 졸업하자마자 군입대를 하게 된 거야. 다녀와서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취직도 안 되고, 그 당시엔 취직이라는 게 요즘처럼 다양하지도 않았거든. 가장 좋은 게 고시 패스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땐 이미 시간이 늦었고. 그럼 신문기자를 할까 뭘 할까 고민해봤는데 다 적절치가 않았어. 그러다 우리 동료들이 연극하는 걸 보고 ‘연극을 해야겠구나’ 해서 연극을 하게 된 거야.


처음부터 나이 든 배역을 많이 맡았다고 하던데요?
그때 우린 다 노역부터 시작했어. 주인공부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작이 노역이었다고. 노역을 세 차례 계속하고 난 다음에야 주인공을 했으니까. 할 만할 땐 젊은 역도 하고 말이지. 특히 TV나 영화에서는 멜로드라마도 하고 러브신도 했어. 다 벗진 않았지만 빤스 입고도 해보고 다 해봤다고.(웃음)



꽃보다 할배, 청춘의 아이콘


<꽃보다 할배> 시즌1 유럽편이 막을 내린 요즘, 이순재를 비롯한 할배 4인방은 본업으로 돌아가 연기에 매진하고 있다. 내달 연극을 앞둔 신구, 새 드라마 방영을 앞둔 박근형, 일일드라마 촬영이 한창인 백일섭에 이어 이순재 역시 연극 연출과 시트콤 복귀를 앞두고 있다. 이들의 현재에 주목해도 모자랄 테지만 아직까진 <꽃보다 할배>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순재의 그 무쇠 같은 체력의 원천 말이다. 



<꽃보다 할배> 이후 새로운 별명이 생겼어요, ‘직진순재’. 어쩜 그렇게 쉬지도 않고 걸어다녔나요?
그렇게 습관이 들었어. 어기적거리지 않고 걷다보니까 빨라진 거지. 나이 오십 다 돼서 늘그막에 골프를 배웠는데, 그때 가르치던 선생이 걸음을 빨리 걸으라는 거야.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거치적거리지 않고 매너라는 거지. 그러다보니 습관이 됐어. 사실 그때 신구나 박근형, 백일섭이도 같이 배웠거든. 근데 나이 먹으니까 다들 느려지기도 하고 그런 거야.


이런 유의 방송은 방송계에서도 처음이고 선생님에게도 처음이에요. 첫 방송 편집본 보고 어땠나요?
글쎄, 사실 큰 기대는 안했거든. 오랜만에 노인들 엮어서 가니까 관심 가질 순 있겠지만 뭐 그리 큰 반응이 있겠나 싶었지. 게다가 케이블 방송이니까. 드라마 속 연기만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배우의 참모습이 나오니까 그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

tvN <꽃보다 할배>의 맏형 이순재의 즐거운 한때.
tvN <꽃보다 할배>의 맏형 이순재의 즐거운 한때.


네 분 성격이 다 제각각이에요. 어떤 인연으로 친해진 거예요?
20대 때부터 쭉 함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친해지는 게 당연해. 20대 중반에는 연극하고 30대 들어서는 방송하고 그랬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고. 일상에서도 같이 운동을 한다거나 술 한잔 기울이는 식이야. 그러니 (촬영차 유럽에) 가서도 큰 트러블 없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거지. 신구도 다음 달에 연극 들어가. 그럼 또 보러 가야지. 부지런히 연극하는 사람이 신구라고. 그러니까 연기력이 녹슬지 않아. 이유가 거기 있는 거예요. 박근형도 백일섭도 마찬가지고. 밥 먹고 늘어져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쉬지 않아요.


이번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딘가요?
역시 스위스가 좋더라고. 여행을 많이 한 적은 없지만 1994년엔가 국회의원 할 적에 유럽을 방문한 적이 있어. 그때도 스위스가 제일 좋았거든. 융프라우에 올라갔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림 같더라고. 사실 스위스가 산악지대에 있는 빈곤한 나라란 말이야. 평야도 없고 맨 산간인데 그걸 잘 이용해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나라야. 그 어려운 1, 2차 세계대전 겪으면서도 중립을 유지한 민족성, 국민적 에너지가 지금의 부국을 만든 이유구나, 새삼 느꼈지.


시즌2 촬영차 얼마 전엔 대만에 다녀왔는데, 유럽 때보단 좀 수월했나요?
일단 가까우니까. 역사박물관에는 경탄할 만한 진기한 유품들이 아주 많더라고. 10년 전에 가본 적이 있는 화련이란 지역에도 갔는데, 예전엔 아스팔트도 안 깔린 협곡이었거든. 지금은 관광지로 아주 잘 개발해놨더라고. 타이페이도 과거보다 훨씬 깨끗하고 질서정연해졌고. 시민의식도 많이 고양됐구나 하는 걸 느꼈지. 


직업적으로도 체력관리가 필수일 텐데, 평소 어떻게 관리하나요?
아직까진 연기하다 쓰러진 적이 없어. 이제 곧 노령인구 1천만 시대야. 요즘엔 웰빙이다 뭐다 해서 다들 잘 먹고 잘 지내니까 건강해. 그러니까 60, 70이면 허약할 거라는 건 다 옛날 이야기야. 그 후에 관리를 어떻게 하고, 뭘 할 것인가가 중요한 거지.


촬영장에서 (건강을 위한) 사소한 생활습관 같은 건 없나요?
그런 건 없어. 다만 우리 직업이라는 게 보기에는 쉬운 것 같고 만날 하던 일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다 긴장 속에서 하는 작업이란 말이야. 대선배일수록 틀리지 않으려고 하고, 그걸 늘 머릿속에 염두에 두기 때문에 늘어질 시간이 없어. 정신적인 면에서 오는 긴장감이 일단 강하지.


방송으로 얼핏 보니까 사모님이 이것저것 잘 챙겨주던데, 식단 관리는 따로 하는 편인가요?
몰라, 나는 주는 대로 먹으니까. 우리 집사람이 다 알아서 하는 거지. 집사람이 나 때문에 덕 본 건, 내가 한 번도 음식 가지고 뭐라고 한 적이 없다는 거야. 미식가나 대식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주는 대로 아무 거나 잘 먹어요.


사모님이 한국무용을 전공했던데요. 두 분 다 예술을 했으니까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직업적 이해가 충분히 됐죠. 그러니까 가능했던 거지, 이해가 안 되면 죽었다 깨도 못 해요.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남편이 애도 보고 설거지도 하지만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단 말이야. 더군다나 우리는 직업적으로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못 됐다고. 요즘처럼 프로그램 하나 마치면 6개월 쉬고, 몰디브로 재충전하러 가고 그럴 팔자가 아니야. 드라마도 2편을 동시에 하거나, 영화도 10편 정도 동시 계약해서 촬영했으니까. 심지어 하루에 영화 4편 찍은 적도 있어. 그렇게 뛰어야 겨우 먹고 살았거든. 한 달에 기껏해야 집에서 밥 먹은 게 닷새였는데, 뭘. 바깥에서 주야로 뛰어야 돼. 요즘 같으면 이혼감이지, 이혼감이야.

tvN <꽃보다 할배>의 맏형 이순재의 즐거운 한때.
tvN <꽃보다 할배>의 맏형 이순재의 즐거운 한때.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PD가 만드는 새 시트콤에 또 출연한다고요.
나이 먹은 주책없는 인간이 한 명 필요한 모양이더라고.(일동 웃음)


이젠 그런 이미지가 싫지는 않나요?
배우가 멋있는 역할, 근사한 역할만 할 수도 있겠지. 근데 결국은 다 해야 해.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달렸지. 옛날엔 다들 악역을 안 하려 했어. 인상이 잘못 박히면 사생활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 근데 요즘은 개성시대라 악역만 잘해도 얼마든지 CF를 찍을 수 있잖아. 나 역시 배역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만들어내는 재미에 연기를 하는 거니까 (어떤 이미지의 배역이라도) 상관없어요.


젊은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올 수 있는 대선배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 좋다고, 사인해달라고, 사진 찍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인기가 없어봐. 뒷방 늙은이하고 찍겠어? 대단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야. 그러니까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해. 생각은 아직 30대지.(웃음)


아직도 30대 마인드를 갖고 사는 비결은 뭔가요?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며 사는 거예요.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면 늙는 거야.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걸어다녀야지. 대접받길 바라면 안 돼. 가끔 후배들과 골프를 치러 가는데 거기에 나이 먹은 사람은 없어요. 없는 이유가 뭐냐. 자꾸 대접받으려 하니까 어울리기 힘든 거야. 동일한 조건으로 참여해야지.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야. 밥도 나이 먹었으니까 나부터 달라고 하면 남들에게 지장이 간다고. 그럼 다음에 날 부르지 않아. 몸 사리지 말고 해야 해. 그럼 의지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겨. 저절로 건강해지지. 나는 그래. 내일 모레 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후배들과 동일하게 어울리는 게) 어렵지 않아요. 오늘도 오전부터 촬영하고 오후에 연습하고 이따 또 새벽 2시까지 촬영한다고.(웃음)   



아침부터 새벽까지 내달리는 일상이 올해로 57년째. 젊은 시절엔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은 후배들이 가득한 현장 분위기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긴장한다고 말한다. 배우의 자존심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인터뷰 김가영 기자 | 사진 신승희
  2013.8.14 PM 21:00 관악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