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소음·중간 박수·스트레스 없는 '3無 음악제'

  • 평창=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7.29 02:59

제10회 대관령국제음악제

27일 강원도 평창 리조트 알펜시아의 최저기온은 17도. 해발 700m 대관령 고원에 자리 잡은 덕에 이곳은 저녁엔 반팔 티셔츠만 입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다. 지난 25일 시작한 제10회 대관령국제음악제는 기온만 서울과 다른 게 아니다. 여기선 성 김 주한 미국대사, 김성환 전 외교부장관,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부터 박칼린 뮤지컬 음악감독 같은 음악 애호가와 정경화·정명화 같은 연주가를 동네 이웃처럼 마주칠 수 있다.

27일 저녁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대관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공연
27일 저녁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대관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공연. /대관령국제음악제

열세 살 딸과 함께 온 성 김 주한 미국대사는 25일 개막 연주와 다음 날 저녁 연주까지 보고 밤늦게 귀경했다. 작년에도 대관령음악제를 찾았다는 그는 "정전협정 60주년 일정 때문에 자리를 뜨게 돼 아쉽다. 정경화의 '그리그 소나타' 연주가 정말 멋있었다"고 했다.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부부는 25일 개막 연주부터 4박5일간 평창에 머문 클래식 마니아. 김 전 장관은 재임 시절인 2011년 주한 외교사절을 대관령음악제에 초청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다음 달 3일, 50개국 100여명의 주한 외국 대사·대리대사 부부와 함께 음악제를 찾는다.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김일곤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같은 소문난 마니아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음악제를 찾는다.

정경화·정명화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비롯, 국내외 연주자 150여명과 12개국 138명의 대관령 음악학교 학생들은 알펜시아와 용평리조트에서 2주간 먹고 자면서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재작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의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나누고, 식당에서 김치우동을 먹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지금의 평창이다.

26일 저녁 연주회가 끝난 밤 10시쯤, 호텔 라운지에 들른 정경화 감독은 "이날 연주가 너무 멋있었다"며 손열음과 김다솔의 양 볼에 키스를 퍼부었다. 두 사람은 이날 프랑스 작곡가 장폴 프넹이 작년에 발표한 '1930년 파리의 추억'을 한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했다. 시간을 80여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아련한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났다.

정경화도 이날 그리그 소나타 3번을 격정적으로 연주, 2005년 왼손 검지 부상 이전의 전성기 모습을 보여줬다. 27일 만난 '무대의 완벽주의자' 정경화는 "기량을 1만% 보여준 것 같다. 연주자로서의 생명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연주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곳 공연장에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보는 3가지가 없었다. 첫 번째는 휴대폰 소음. 627석 평창 알펜시아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선 한 번도 휴대폰 소리를 못 들었다. 두 번째, 악장 중간 박수가 없었다. 청중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제로. 교통 혼잡으로 제시간에 도착할까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느긋한 휴양지에서의 음악회만이 가진 미덕이다.

대관령음악제 저명 연주가 시리즈는 다음 달 4일까지 7차례 더 남아 있다. (02)725-3394, www.gmmf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