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하는 오보에 연주자 본 적 있나요?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7.17 23:25

[18일 코리안 심포니 협연서 지휘하는 알브레히트 마이어]

지휘 대가가 이끄는 베를린 필… 제겐 가장 훌륭한 수업이죠
베테랑도 무대 공포증 있어 전 요가로 극복한답니다

90년 전통의 영국 음악전문지 '그라모폰'은 최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48)를 (클래식)'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렸다. 그가 속한 관현(管絃) 분야에선 제임스 골웨이·이자크 펄만 등 생존 연주자는 물론, 파블로 카잘스·야사 하이페츠·예후디 메뉴인처럼 타계한 거장들까지 포함됐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지난 주말 방한한 마이어는 "이렇게 위대한 음악가들과 함께 이름을 올려 너무나 영광스럽다"고 했다.

당대 최고의 오보에 주자로 꼽히는 마이어는 18일 콘서트에서 연주와 함께 지휘자로도 나선다. 바흐와 헨델의 오보에 협주곡은 연주와 지휘를 겸하고,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를 지휘한다. 관악주자가 협연을 하면서 지휘까지 겸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190㎝ 장신의 마이어는“악기에 입을 대고 연주하는 모습은 한 번도 사진이 잘 나온 적 없다”며 오보에를 손에 쥐고만 있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02년부터 지휘를 겸업한 마이어는 지금까지 150차례 지휘자로 섰다. 하루 1시간 오보에 연습을 하면, 2시간은 악보를 넘기며 지휘 공부를 하는 게 요즘 일과다. '지휘 교육'을 따로 받진 않았다. 그는 "베를린 필은 가장 훌륭한 지휘 교실"이라고 했다.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앉아 지휘자 바로 앞에서 그가 단원들을 어떻게 이끌고 소통하는지 지켜보거든요. 클라우디오 아바도·사이먼 래틀·피에르 불레즈·주빈 메타 같은 최고의 지휘자들이 제 선생님입니다. 어떤 지휘자가 이런 '수업'을 받겠어요?" 하지만 "연주보다 지휘가 훨씬 더 어렵다"고 실토한다.

카라얀 사후 베를린 필을 이끌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92년 스물일곱 살의 마이어를 오보에 수석으로 발탁했다. "모두 누가 그 자리를 맡을 건지 주목했으니, 스트레스가 컸던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너무나 행복한 도전이었습니다. 아바도는 특히 젊은 연주자들을 아꼈어요. 이 때문에 '카라얀 시대'부터 있던 고참 단원들이 뒷전에 밀려났다고 생각해서 갈등이 많았지요."

오보에를 연주하면서 지휘하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그는 "평생 오보에 연주를 해왔기 때문에 지휘자가 따로 있는 것보다 연주하며 지휘를 하는 게 훨씬 더 쉽다"고 했다. "지휘자가 있으면, 제가 원하는 해석을 지휘자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그가 또 저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지휘자는 다시 오케스트라가 독주자를 따라오게 이끌어야 하고…."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밀고 당기는 '신경전'은 관객으로선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하지만 마이어는 몸서리를 쳤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끔찍해요. 지휘자보다 제가 그 작품에 대해 다섯배쯤 더 많이 알고 있는데, 자기 생각만 강요하면 어떻게 수긍하겠어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나 카를로스 클라이버처럼 음악에 해박한 지휘자라면 군소리 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휘자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

마이어 같은 베테랑 연주자도 무대 공포증이 있을까. "마우리치오 폴리니 같은 위대한 피아니스트도 무대에 걸어들어올 때의 표정은 '패닉(공황)'이라고 할 만큼, 긴장하더라고요. 연주를 마친 뒤엔 얼굴에 확연하게 안도하는 표정이 떠오르지요. 저도 요가나 불교 공부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려고 무던히 노력합니다."'지휘자' 마이어는 "에너지와 창의성이 넘치는, 젊은 피의 멘델스존을 보여주겠다"고 별렀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187회 정기연주회, 1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23-6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