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관객 "이렇게 웃어본 게 언젠지 몰라"

  • 전주=정지섭 기자

입력 : 2013.06.17 03:09 | 수정 : 2013.06.17 10:08

[원로 연예인들 전국 순회공연 '추억의 福GO클럽' 전주서 시작]

리허설 안해도 느긋한 가수와 즉석 연기 선보이는 희극인들
1500여 객석 메운 '할머니 팬' 무대로 뛰어나와 어깨춤 들썩

남성남·임희춘·김영하(왼쪽부터) 등 희극인들이‘옛날식 콩트’를 선보이고 있다.
남성남·임희춘·김영하(왼쪽부터) 등 희극인들이‘옛날식 콩트’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14일 오후 2시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 서울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고 16명의 '별'이 내리자 1500여 객석은 전주·완주·군산·익산 등지에서 온 어르신 팬들의 열기로 이내 후끈 달아올랐다.

가수 금사향·김은애·김마리아·남백송·명국환·박건·복수미·은방울자매·이갑돈, 코미디언 김영하·남보원·남성남·서우락·유성·임희춘(가나다순). 노래와 웃음으로 오랫동안 대중들을 위로해온 왕년의 '별'들이 총출동한 공연 이름은 '찾아가는 추억의 가요무대 복고(福GO)클럽'. 잊혀가는 대중문화 원로들과 이들을 그리워하는 팬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대한가수협회가 2011년부터 진행 중인 전국 순회공연이다. 이날 전주 공연으로 올해 '시즌3'이 시작됐다.

리허설 시간이 없어도 별들은 느긋했다. 50년 전통의 김인배 악단이 악기를 설치하는 동안 가수들은 꽃단장했고, 희극인들은 즉석에서 연기를 짰다. 김인배 악단의 우렁찬 서곡(序曲)을 시작으로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에 이어 이갑돈과 김마리아 등이 녹슬지 않은 목소리로 객석을 사로잡고, 서우락·유성 두 MC의 '아슬아슬한 만담'이 이어졌다.

서우락이 유성보고 "네가 나보다 큰 게 뭐가 있어. 눈이 크니, 귀가 크니?"라고 약 올리자 유성이 "있어. 너보다 훨씬 길고 굵은 거 보여줄게"라며 바지 지퍼에 손을 갖다댔다. "오메" 하며 눈이 휘둥그레진 할머니들은 유성이 바지춤에서 '길고 굵은' 넥타이를 뽑아내자 박수 치며 깔깔 웃었다.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 남백송·복수미의 '전화통신' 등 리듬감 있는 노래마다 서너 명의 '할머니 팬'이 뛰어나와 부채를 들고 어깨춤을 췄다.

희극인들은 1970~80년대 '유모어극장' '웃으면 복이와요' 장면을 그대로 떼어 온 듯했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을 따다다다 쏟아내는 김영하의 '따발총 개그'에 "신고산이 와뜨뜨뜨뜨드" 외치며 등장한 남성남의 '주취(酒醉) 개그', 부부싸움 말리려다 되레 면박당하는 임희춘의 '구차 개그'가 버무려져 객석에 꽂힐 때마다 웃음 보따리가 빵빵 터졌다. "왔구나, 왔어!"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남보원이 오르자 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입에다 두 손만 대면 못 내는 소리가 없는 남보원은 익숙한 대포 소리, 기차 소리는 물론 갈매기 짝짓기 소리까지 능청스럽게 만들어냈다.

피날레의 주인공은 연분홍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고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선 금사향. "별들이~ 소곤대는~"으로 시작하는 '홍콩아가씨' 등 히트곡을 부르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관객 이명례(80) 할머니는 "웃고 손뼉 치다 보니 두 손이 얼얼했다. 이런 적이 언제였는지 몰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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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온 별들이 14일 전주 화산체육관에 모였다. 변함없는 가창력의 금사향·이갑돈·명국환(앞줄 왼쪽 다섯째부터 나란히), 원맨쇼의 일인자 남보원(앞줄 오른쪽부터 넷째), 1950년대 악극 전성시대를 이끈 김마리아(맨 왼쪽)등 원로들은 저마다의 재능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관객들에게 추억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전주=김영근 기자
출연자들에게도 특별한 무대였다. 1950년대 악극단 가수로 활동한 김마리아는 응어리를 풀었다. "이난영 언니가 이몽룡역, 내가 춘향역 맡을 정도로 인기 절정이었어. 그런데 결혼 뒤 남편이 악극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사별(死別)하고 서른아홉부터 다시 노래했지만 그땐 벌써 잊힌 뒤였어. 그래도 고맙지, 지금이라도 맘껏 부를 수 있으니."

희극인들에겐 '짝꿍'의 빈자리가 아쉬운 무대였다. '콤비' 남철이 건강 사정으로 불참해 '왔다리갔다리' 춤을 보이지 못한 남성남은 "요즘 TV에서 애들이 개그라고 하는 게 어디 코미디인가. 그건 그냥 게임이야. 게임"이라 했고, 남보원은 "백남봉(2010년 별세) 생각이 간절해. 라이벌이 없으니 골키퍼 없는 골문 앞 노마크 찬스처럼 허탈해"라며 쓸쓸히 웃었다.

은방울자매 오숙남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소통"이라고 했다. "함께 나이 들잖아요. 작년에 뵌 팬이 올해엔 안 계세요. 올해 뵌 어떤 팬도 내년엔 못 보겠죠. 살아있을 때 더 소통해야죠." 무대와 객석, 그 누구에게도 마지막 무대일 수 있는 '복고(福GO)' 공연은 전주에 이어 올해 충북 보은(7월)·강원 태백(8월)·경북 성주(9월)·경남 진주 및 사천(10월)·서울 동대문구(12월)로 이어진다. (02)3219-5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