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은 끔찍한 惡夢… 그래도 황홀하지 않나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3.06.06 03:03

[극 '더 비' 연출·출연한 일본 연극계 스타 노다 히데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면서 숨은 폭력성 드러내는 작품처럼 몰랐던 자신 발견하는 게 연극
진짜 같은 환상 보여주고 싶어 종이 한 장도 계산하고 움직여

‘더 비’에서 인질범의 부인(오른쪽)으로 나오는 노다 히데키의 모습.
/명동예술극장 제공
이 연극을 보는 것은 돈을 내고 악몽을 꾸는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표를 사서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무조건 잊고 싶기만 한 게 아니라 가슴에 남아서 울리는 것,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악몽 같은 괴로움까지도 가치 있게 만드는 연극의 힘이다."

7~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비(The Bee, 벌)'의 연출가 노다 히데키(58)의 설명이다. 2005년 어촌에 표류한 남자를 통해 아웃사이더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던 '빨간 도깨비'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그가 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이 연극의 줄거리는 자극적이다. 남자가 퇴근해 집에 와보니 아내와 아이가 범죄자의 인질로 잡혀 있다. 애원도, 경찰도 도움이 안 된다. 궁지에 몰린 남자는 이번엔 인질범의 아내와 아이를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한다. 두 남자가 서로의 처자식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이면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부른다. 평범한 회사원에게서 거대한 폭력성을 찾아내며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아는가, 당신 안의 당신을?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폭력의 사슬이 얽히고설키고, 옳고 그름이 흔들리고, 배우의 성별도 뒤바뀐다. 노다 히데키는 주인공에게 인질로 잡히는 인질범의 부인으로 나오고, 남자 주인공으로 올리비에상 수상자인 여배우 캐서린 헌터가 출연한다. '더 비'는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006년 영국 런던 초연 후 도쿄, 뉴욕, 홍콩, 예루살렘에서 공연했다.

노다 히데키는 현재 일본 연극계의 스타. 연출가이면서 희곡도 쓰고 연기도 한다. 도쿄대 법대를 중퇴하고 연극에 뛰어든 30대의 그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면 50대의 그에게는 명성이 더해졌다. "나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한 세대의 고민을 얘기한 것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전후 세대에 울림이 컸던 것 같다."

그에게 연극은 '몸이 모든 걸 말해주는 예술'이다. "여기 손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그저 손이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세상에 없는 공간과 느낌을 만들어낸다. 연극은 이처럼 사실은 없지만 있어 보이는 '환상(illusion)'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령 끔찍한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일본 연극 연출가 노다 히데키.
2009년 연극으로 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OBE 훈장, 일본 정부가 주는 퍼플 리본 메달까지 받은 연출가 노다 히데키는“연극 한다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좋아보였나보다”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4일 서울 광화문에서. /이덕훈 기자
소품도 신체의 연장이다. '더 비'에서는 종이 한 장까지도 정교하게 계산돼 놓이고 움직여진다. "환상을 창조하기 위해 어떤 계산을 집어넣었는지 생각하며 보신다면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빨간 도깨비' 내한 공연을 하며 만났던 연극인의 열정이 좋았고, 대학로의 활기가 부러워서 그에게 한국은 '특별한 나라'라고 했다. "다섯 살 딸과 처음 여행한 곳이 한국이다.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네가 만나야 할 나라,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한국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