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상절' 복원한 이 사람, 日本人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3.05.31 03:01 | 수정 : 2013.05.31 14:12

['석보상절' 잃어버린 이야기 찾은 가와세 유키오씨]

첫 한글 산문 작품 '釋譜詳節' 전체 24권 중 10권만 전해져

월인천강지곡·월인석보 등 7년간 고문헌 뒤져가며 작업
原典 80~90%를 복원해 日譯 "석보상절은 한국만의 보물"

"석보상절은 아시아 불교의 천년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습니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오직 한국에만 있는 보물이지요."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 '석보상절(釋譜詳節·보물 제523호)'은 세종 때 죽은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쓰인 우리 역사 첫 한글 산문 작품이다. 하지만 전체 24권 중 10권만 전해져, 그 전체의 모습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한국 학자도 아닌 일본인이 이 책의 잃어버린 부분을 퍼즐 맞추듯 복원해 일본어로 번역해냈다. 동국대 박사과정 수료자인 가와세 유키오(河瀨幸夫·68)씨다.

잃어버린 퍼즐을 맞추듯‘석보상절’을 복원해 일본어로 번역한 가와세 유키오씨가 서울 장충동 동국대 도서관에 보관 중인 석보상절 원본을 살펴보고 있다.
잃어버린 퍼즐을 맞추듯‘석보상절’을 복원해 일본어로 번역한 가와세 유키오씨가 서울 장충동 동국대 도서관에 보관 중인 석보상절 원본을 살펴보고 있다. /이태훈 기자
가와세씨는 세종이 지은 불교 찬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편한 '월인석보(月印釋譜)' 등 남아 있는 우리 고문헌에서 석보상절의 사라진 조각들을 찾아냈고, 7년여 작업 끝에 최근 요코하마의 학술 전문 출판사 슌푸샤(春風社)를 통해 일본어판 '석보상절'을 완간했다. 그는 30년 넘게 공부해온 유창한 우리말로 "원전의 모습을 80~90%쯤은 복원했다"고 말했다. 김영배(81) 동국대 명예교수(세종기념사업회 역주위원)는 "한국에서도 없었던, 학술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을 일본인이 해냈다는 게 더 놀랍다"고 했다.

가와세씨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무렵이다. 와세다대에서 일본 고문학을 공부하고 고교 국어(일본어) 교사로 일하던 그는 관광차 온 한국 시골 풍경에 푹 빠져들었다. 일본어와 어순이 같은 한국말도 흥미로웠다. 그해 10월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한국에 들를 때마다 교보문고에서 초중고 교과서도 차례로 사다 읽었고요. 특히 한국 신문은 일본에 대해 독특하고 깊이 있는 시각과 분석을 보여주더군요."

2003년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뒤 아예 동국대로 유학을 왔다. 일본과 한국 불교의 대장경을 비교 연구해 석사를 딴 뒤, 2005년 박사과정 때 "일본 헤이안시대 불교 문헌 '곤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와 비슷한 책이 조선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석보상절과의 첫 만남이었다. "일본 불교는 특히 에도 막부시대 이후 종파에 따라 가르침도 크게 달라졌어요. 석보상절을 읽으면 옛날 일본 스님과 신자들이 이해했던 불교의 원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석보상절,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을 텍스트로 대장경의 한문 원문도 비교해 읽었다. 다른 우리 고문헌, 지장경이나 약사경 등 일본에 번역된 불경 등도 참고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 고문헌과 불교 공부가 정말 즐거워서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석보상절만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와 경전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은 동아시아 불교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워요. 일본 사람들도 저처럼 석보상절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