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30 23:50
[대구 에르메스 '신발 쇼']
신발의 '이야기' 들려주고 다리만 나오는 무언극 공연… '신상 쇼' 아닌 종합예술 쇼
공연 지휘한 조엘 부비에 "신발 하나로 마음껏 상상"
눈앞엔 날렵하고 매끈한 남성용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옆에 서 있던 큐레이터가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이 신발이 말을 할 거예요."
헤드폰을 꼈다. 젊은 남자의 영어 독백이 흘러나왔다. "내가 어딜 가든 여자들이 따라붙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면 펌프스와 하이힐이 내게 추근대고. 이놈의 인기란…." 듣다 보니 킥킥 웃음이 나왔다.
29일 대구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프랑스 회사 에르메스(Hermes)는 이곳에서 '구두 명장(名匠)' 피에르 아르디(Hardy)가 만든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을 소개하는 '신발 쇼(Shoe Show)'를 열었다. 에르메스 측은 "서울만큼이나 큰손 고객이 많고 큰 매장이 있는 지역이 대구여서 이곳에서 공연을 열게 됐다"고 했다. 아르디는 신발에 건축적 요소를 도입한 작품을 발표해온 세계적 구두 디자이너다. 처음엔 그저 그가 만든 신발 몇 켤레를 보여주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오산(誤算)임을 알았다.
헤드폰을 꼈다. 젊은 남자의 영어 독백이 흘러나왔다. "내가 어딜 가든 여자들이 따라붙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면 펌프스와 하이힐이 내게 추근대고. 이놈의 인기란…." 듣다 보니 킥킥 웃음이 나왔다.
29일 대구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프랑스 회사 에르메스(Hermes)는 이곳에서 '구두 명장(名匠)' 피에르 아르디(Hardy)가 만든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을 소개하는 '신발 쇼(Shoe Show)'를 열었다. 에르메스 측은 "서울만큼이나 큰손 고객이 많고 큰 매장이 있는 지역이 대구여서 이곳에서 공연을 열게 됐다"고 했다. 아르디는 신발에 건축적 요소를 도입한 작품을 발표해온 세계적 구두 디자이너다. 처음엔 그저 그가 만든 신발 몇 켤레를 보여주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오산(誤算)임을 알았다.

행사의 시작은 '워크 앤드 토크(Walk and Talk)'였다. 전시장 곳곳엔 신발과 헤드폰이 놓여 있었다. 에르메스는 이 신발을 의인화(擬人化)했다. 신발 각각의 사연을 상상해 독백이나 대화로 구성한 것. 가령 여성용 여름 샌들과 남성용 보트 슈즈가 놓여 있다면 관객은 헤드폰으로 여객선 기관실에서 마주친 여성 승객과 선장의 밀담(密談)을 엿들을 수 있다. 대화의 마지막은 이랬다. "선장님 제가 여기 온 걸 비밀로 해주실 수 있으세요?" "제 명예를 걸죠!"
신발의 은밀한 얘기를 다 듣고 나면 관객은 옆 칸에 설치된 작은 극장으로 초대된다. 무대는 길고 얇은 상자처럼 생겼다. 무대에 누군가가 서면 관객은 그의 허리 아래만 볼 수 있다. 의자에 앉자마자 무언극(無言劇)이 시작됐다. 시작은 달리기였다. 떠들썩한 환호성,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용가 네 명이 힘차게 다리를 움직였다. 빠르게 질주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이들의 다리가 붕 하늘로 떠올랐다. "와…." 객석에서 감탄이 새어나왔다.
신발의 은밀한 얘기를 다 듣고 나면 관객은 옆 칸에 설치된 작은 극장으로 초대된다. 무대는 길고 얇은 상자처럼 생겼다. 무대에 누군가가 서면 관객은 그의 허리 아래만 볼 수 있다. 의자에 앉자마자 무언극(無言劇)이 시작됐다. 시작은 달리기였다. 떠들썩한 환호성,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용가 네 명이 힘차게 다리를 움직였다. 빠르게 질주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이들의 다리가 붕 하늘로 떠올랐다. "와…." 객석에서 감탄이 새어나왔다.

달리기 뒤엔 여름휴가가 이어졌다. 샌들을 신은 여자의 다리와 가죽 슬립온 신발(끈이 없는 신발)을 신은 남자 다리가 마주 보더니 경쾌하게 움직였다. 무대가 전환되고 남자의 춤은 탱고로 바뀌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눈발이 가득 휘날리는 들판에 선 여자였다. 실크 스카프를 끌고 천천히 무대에 오른 여자는 우아한 몸짓으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자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사라졌다. 무대엔 구두 한 켤레와 가득 쌓인 흰 눈만 남았다.
공연을 지휘한 프랑스 무용가 조엘 부비에(Bouvier)는 "아르디가 만든 신발을 신어보고 떠오른 영감을 퍼포먼스로 옮겼다"고 했다. "신발은 낮은 곳에 있지만 우리를 멋진 순간으로 데려다주죠. 신발 하나로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전 상상했습니다(웃음)."